
패턴이 된 신체: K-pop 군무의 시각 권력과 무한 공간의 스펙터클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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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현대 K-pop 군무를 신체가 기하학적 패턴으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각 권력과 현대적 숭고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레니 리펜슈탈의 전체주의적 기하학과 버스비 버클리의 만화경적 안무를 도상학적 계보로 추적하여, K-pop의 집단 신체가 개별성을 소거하고 패턴화되는 미학적 구조를 고찰한다. 센터를 정점으로 한 대칭적 대형이 창출하는 시각적 위계와 통제된 질서가 유발하는 전체주의적 공포와 숭고의 황홀경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분석한다. 나아가 BLACKPINK, BTS, 에스파의 사례를 통해 CG 기술로 확장된 무한 공간이 초월·디스토피아·하이퍼-리얼이라는 세 가지 공간 유형으로 구현되면서 신체의 기술적 아우라를 어떻게 완성하는지 논증한다. 본 연구는 K-pop의 시각적 성공이 신체를 패턴화하여 권력적 질서 속에 배치하고, 이를 첨단 기술로 증폭시킨 결과임을 밝힘으로써 디지털 콘텐츠 영상미학의 새로운 비평적 지평을 제시한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K-pop synchronized choreography from the perspectives of visual power and the modern sublime, in which the body is reduced to geometric patterns. Tracing the iconographic genealogy from Leni Riefenstahl’s totalitarian geometry to Busby Berkeley’s kaleidoscopic choreography, this study examines the aesthetic structure through which collective bodies in K-pop erase individuality and become patterned. In addition, the dual structure of totalitarian fear and ecstasy of the sublime, generated by the visual hierarchy and controlled order of symmetrical formations centered on a central figure, is analyzed. Through case studies of BLACKPINK, BTS, and aespa, the study demonstrates how computer graphics (CG)-expanded infinite space is realized as three spatial types (transcendent, dystopian, and hyper-real). Each type constitutes a distinct power enacted through the spatial positioning of the body. Employing iconographic genealogy and case-based visual analyses, this study reveals that K-pop’s visual success results from patterning bodies within an order of visual power and amplifying them through advanced technology, presenting a new critical horizon for the visual aesthetics of digital content.
Keywords:
K-Pop Synchronized Choreography, Visual Power, Sublime, Totalitarian Aesthetics, Infinite Space키워드:
K-Pop 군무, 시각 권력, 숭고, 전체주의 미학, 무한 공간Ⅰ. 서 론
현대 대중문화의 지형도에서 K-pop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글로벌 시각 문화의 정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인 군무(Synchronized Choreography)는 수많은 인원이 오차 없이 움직이는 극단적인 일치감을 통해 강력한 시각적 쾌락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완벽한 대칭과 일사불란함은 경탄과 동시에 모종의 기이함(Uncanny)을 수반한다. 개별 주체의 신체가 지워지고 거대한 기하학적 패턴의 부속물로 기능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감각이다. 기존 K-pop 연구가 산업적 성공 요인이나 팬덤 문화에 집중해 왔다면, 본 연구는 K-pop 군무를 시각 권력이 작동하는 장치이자 무한 공간으로 확장된 현대적 숭고(Sublime)의 미학으로 정의하고 분석한다. 선행 연구들이 주로 K-pop의 산업 구조, 글로벌 팬덤, 문화적 혼종성에 주목해 온 것과 달리, 본 연구는 군무의 시각적 형식 자체에 내재된 권력 구조와 미학적 계보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최근의 K-pop 뮤직비디오는 CG(Computer Graphics)와 가상 세계관을 적극 도입하며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스펙터클을 구현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군무의 도상학적 계보를 추적하고, 기술적 확장이 신체의 미학적 가치를 어떻게 변모시키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의 학술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중음악 퍼포먼스를 예술사적 관점(리펜슈탈의 전체주의 미학, 버클리의 만화경 미학)과 연결함으로써 K-pop 미학의 비평적 지평을 확장한다. 둘째, CG·VFX 등 디지털 기술이 신체의 패턴화를 가속화하고 기술적 아우라를 생성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한다. 셋째, 시각 권력과 공간 미학의 관점에서 차세대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위한 미학적 분석 틀을 제시한다.
이에 다음 세 가지 연구 문제를 설정한다. 첫째, K-pop 군무의 기하학적 패턴은 역사적·도상학적으로 어떠한 미학적 계보를 계승하는가? 둘째, 군무의 대칭성과 반복성이 만들어내는 시각 권력 구조는 관객에게 어떠한 심리적 위계와 미적 경험을 유도하는가? 셋째, CG로 구현된 무한 공간과 신체의 무한 복제는 디지털 콘텐츠 환경에서 어떻게 새로운 기술적 아우라를 획득하며, BLACKPINK·BTS·에스파의 사례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가?
연구 방법으로는 시각문화연구(Visual Culture Studies)와 영상미학(Image Aesthetics)의 관점을 토대로, 도상학적 계보 분석(iconographic genealogy analysis)과 사례 기반 영상 분석(case-based visual analysis)을 병행하였다. 도상학적 계보 분석은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의 도상학 3단계—전도상학적 기술, 도상학적 분석, 도상해석학—를 원용하여, 리펜슈탈·버클리·공드리와 K-pop 군무 사이에 반복되는 시각 형식(부감 쇼트, 방사형 대형, 신체 복제)의 구조적 유사성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수행하였다. 단, 본 연구가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제작자의 의식적 참조·인용이라는 계승 관계가 아니라, 시각 권력이 역사적으로 특정 시각 문법을 반복 소환하는 구조적·형식적 계보임을 명확히 밝혀둔다. 사례 기반 영상 분석은 각 뮤직비디오를 장면(scene) 단위로 분절하여 ① 군무의 대칭·반복 구조, ② 부감·드론 쇼트 활용 여부, ③ CG 공간의 유형(초월/디스토피아/하이퍼-리얼)의 세 기준으로 카메라 시점, 대형 구성, CG 공간 연출을 분석하는 절차로 진행하였다. 군무의 대칭 구조, 카메라 시점, CG 공간 연출, 신체 복제 효과 등을 중심으로 퍼포먼스가 생성하는 시각 권력의 구조를 해석하였다. 분석 대상은 글로벌 시장에서 강한 시각적 스펙터클 전략을 구축한 BLACKPINK, BTS, 에스파(aespa)의 대표 퍼포먼스 사례로 한정하였다. 그룹 선정은 ①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 10억 회 이상(또는 그에 준하는 글로벌 시각 확산력), ② CG·VFX 활용 규모가 업계 최상위로 비평적으로 주목된 작품 보유, ③ 세 가지 공간 유형(초월·디스토피아·하이퍼-리얼)을 각각 대표하는 미학적 차별성이라는 세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그룹을 대상으로 하였다. 분석 대상 뮤직비디오는 각 그룹의 전체 필모그래피 중 해당 공간 유형이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되고, 발매 당시 시각 효과 규모 및 안무 연출에 대한 비평적 주목도가 높았던 BLACKPINK <How You Like That>(2020), BTS 〈ON〉 키네틱 매니페스토 필름(2020), 에스파 <Armageddon>(2024)으로 한정하였다.
K-pop의 글로벌 확산은 음악적 요소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현대 K-pop은 음악, 군무, 카메라 워킹, 디지털 편집, CG 공간 연출이 통합된 복합적 시청각 시스템으로 기능하며, 이는 유튜브(YouTube), 틱톡(TikTok), 숏폼 플랫폼(Short-form Platform)에 최적화된 구조를 지닌다.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시각적 충격을 전달해야 하는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K-pop 군무의 초동기화(Hyper-synchronization)와 스펙터클 질서(Spectacular Order)는 높은 시각적 중독성과 반복 소비 구조를 형성하였다. 서구 팝 음악이 개인의 개성과 즉흥성, 자유로운 신체 표현을 강조해왔다면, K-pop은 오히려 정밀한 대칭성과 반복, 집단 신체의 초동기화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는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알고리즘 환경과 결합하면서, 반복 시청과 짧은 영상 소비에 최적화된 새로운 형태의 시각 콘텐츠로 진화하였다. 결과적으로 K-pop의 세계적 성공은 단순한 음악 산업의 성장이라기보다, 글로벌 플랫폼 시대에 최적화된 디지털 스펙터클 시스템(Digital Spectacle System)의 구축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기존 K-pop 관련 선행연구는 크게 세 흐름으로 정리된다. 첫째, 산업·팬덤 연구로, Lie는 K-pop을 한국 근대성과 글로벌 자본의 결합물로 해석하였고[1], Jin and Yoon은 디지털 플랫폼 경제와 K-pop 생산 구조의 관계를 분석하였다[2]. 둘째, 신체·젠더 연구로, Kim은 아이돌 신체의 젠더 수행성을[3], Choi and Maliangkay는 K-pop 퍼포먼스에 내재된 젠더 정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4]. 셋째, 안무·시각문화 연구로, Oh는 K-pop 군무의 글로벌 확산 메커니즘을 분석하였으며[5], Doré and Pugsley는 K-pop 뮤직비디오의 영상 문법을 시각문화 관점에서 조망하였다[6]. 이러한 선행연구 위에서, 군무의 시각적 형식 자체에 내재된 권력 구조와 도상학적 계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기존 연구들이 산업 구조, 팬덤의 능동성, 젠더 정치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면, 본 연구는 시각 권력의 구조와 공간 미학이라는 분석 축을 전면에 내세워 영상미학적 비평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한다.
Ⅱ. 군무 대칭 이미지의 도상학적 계보
2-1 전체주의 스펙터클: 레니 리펜슈탈의 기하학적 신체 운용
K-pop 군무에서 목격되는 극단적인 일치감과 대칭적 구도의 미학적 연원은 20세기 초 전체주의 선전 영화가 구축한 시각적 기하학에서 그 도상학적 뿌리를 찾을 수 있다[7]. 리펜슈탈은 1934년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영화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를 통해 수만 명의 신체를 하나의 거대한 추상적 문양으로 환원시키는 시각 문법을 완성하였다[8]. 리펜슈탈의 카메라 안에서 인간은 개별적 감정과 서사를 지닌 주체가 아니라 거대한 질서를 시각화하기 위한 조형적 재료로 기능한다. 높은 부감(high-angle) 촬영을 통해 군중을 격자 또는 방사형으로 배열하는 방식은 개인적 주체성을 지우고 집단적 대오가 형성하는 선과 면의 미학만을 강조한다[9].
그림 1은 리펜슈탈의 부감 쇼트가 포착한 군중 대열의 전형을 보여준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인파는 개별 얼굴이나 표정이 아닌 하나의 균질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격자형과 방사형 배열이 교차하는 구도는 마치 살아 있는 건축물을 연상케 한다. 카메라가 높이 올라갈수록 인간은 점(點)으로 환원되고, 그 점들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선과 면만이 강조된다. 이는 개별 주체의 감정과 서사를 철저히 소거한 채 집단이 형성하는 시각적 질서 그 자체를 권력의 언어로 전환하는 전체주의적 시각 전략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이러한 부감 구도는 관객에게 전지적 시점을 부여함으로써, 거대한 질서의 바깥에 위치한 관찰자임과 동시에 그 질서에 압도당하는 이중적 위치를 경험하게 만든다. K-pop의 드론 쇼트와 버드아이뷰가 이와 동일한 시각적 효과를 현대적 문법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 1은 연구의 도상학적 계보 논증을 위한 핵심 비교 자료로 기능한다. 이 연구에서 리펜슈탈의 전체주의 스펙터클과 K-pop 군무를 연결하는 것은 동일한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공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리펜슈탈의 피사체는 자신이 선전 도구로 활용됨을 인지하지 못한 군중이었으나, K-pop 퍼포머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 예술가로서 해당 시각 형식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또한 리펜슈탈 영상의 목적이 국가 권력의 정당화에 있었다면, K-pop 퍼포먼스는 문화상품의 생산과 유통이라는 산업적 맥락 속에서 작동한다. 이 연구가 주목하는 것은 맥락이 아닌 형식이다. 동일한 시각 문법—부감 쇼트, 방사형 군중 배열, 개별성 소거—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산업적 맥락에서도 반복 소환된다는 사실 자체가 시각 권력이 특정 형식 속에 구조화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매스 게임 형태의 시각적 구성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경고했던 정치의 예술화(Aestheticization of Politics)의 정점을 보여준다[9].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대중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보다 스스로를 구경거리로 전락시킴으로써 지배 권력의 스펙터클에 동원되는 현상을 지적하였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역시 이를 매스 오너먼트(The Mass Ornament)라 명명하며, 대중의 신체가 이데올로기적 목적에 의해 기하학적 장식물로 전락할 때 이성이 마비되고 시각적 도취만이 남게 됨을 비판하였다[10]. K-pop 군무의 대형(formation)은 이러한 전체주의적 시각 전략을 현대 대중문화의 문법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멤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오차 없이 동일한 각도로 팔을 뻗는 행위는 강력한 시각적 안정감과 질서 정연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신체를 기계적 부품처럼 제어함으로써 얻어지는 통제의 미학이 자리한다. 이는 주체가 사라진 자리에 패턴화된 신체라는 기호를 세움으로써 콘텐츠의 완결성을 확보하는 시각 권력의 작동 방식이라 할 수 있다.
2-2 숭고의 안무: 버스비 버클리의 만화경적 미학
K-pop 군무가 창출하는 또 다른 미학적 축은 193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거장 버스비 버클리(Busby Berkeley)가 정립한 만화경적(kaleidoscopic) 스펙터클이다[11]. 버클리는 무대 정점(zenith)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버클리 샷을 고안하여 무용수들의 신체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하학적 패턴의 파편으로 탈바꿈시켰다[12]. 그의 연출은 신체의 유기적 운동성을 기계적 반복과 대칭으로 치환함으로써, 관객이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비현실적이고 수학적인 미의 세계를 조망하게 한다.
그림 2는 버클리 샷의 핵심 원리를 시각적으로 압축하여 보여준다. 카메라를 무대 정점 위에 고정하고 수직 하강으로 촬영한 이 구도에서 무용수들의 신체는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꽃잎처럼 방사형으로 배열된 추상적 문양의 단위체로 변모한다. 각 무용수의 개별 표정이나 감정은 완전히 소거되며, 오직 몸이 이루는 선과 각도, 반복 리듬만이 화면을 지배한다. 이러한 시점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 신체를 살아 있는 그래픽 요소로 인식하게 만들며, 신체가 의미를 발화하는 주체가 아니라 패턴을 완성하는 재료임을 선언하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K-pop 뮤직비디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드론 버드아이뷰 쇼트는 이 버클리 샷의 직계 후손으로,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물리적 제약 없이 무한히 확장된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출은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초월한 거대한 질서 앞에 관객을 압도하는 기술적 숭고(Technological Sublime)의 감각을 유도한다[13].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에 따르면, 숭고(Sublime)란 지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거대함이나 힘 앞에서 주체가 일시적으로 위축되었다가, 이성의 힘으로 그 질서를 파악하며 느끼는 고차원적 쾌락이다[14]. K-pop 뮤직비디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가 크루(Mega Crew) 퍼포먼스나 복잡하게 교차하는 이동 동선은 버클리식 만화경 미학의 현대적 진화형이라 할 수 있다.
버클리식 만화경 미학은 20세기 말 뮤직비디오 영역에서 핵심적인 형태로 재현된다.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감독이 연출한 더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의 <Let Forever Be>(1999)는 실사 촬영과 광학적 합성만으로 인간의 신체를 무한 복제하고 교란시키는 연출을 구현하였다[15]. 주인공 여성의 얼굴과 신체는 반복과 분열을 거듭하며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는 기하학적 오너먼트로 변모하는데, 이는 CG 없이도 신체를 패턴화하여 시각적 숭고를 실현할 수 있음을 증명한 선구적 사례이다. 같은 감독의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 <Come Into My World>(2002) 역시 주인공이 같은 거리를 반복적으로 걷는 루프 구조를 통해 신체가 화면 안에서 누적·증식되는 연출을 보여준다[16]. 한 프레임 안에 네 명의 카일리가 공존하는 최종 장면은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반복 자체가 패턴이 되는 시각 구조를 완성한다.
그림 3은 버클리 샷의 신체 패턴화 충동이 뮤직비디오라는 대중적 형식 안에서 어떻게 재활성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좌측은 미셸 공드리 감독이 연출한 더 케미컬 브라더스의 <Let Forever Be>(1999)로, 주인공의 신체는 광학 합성을 통해 분열·복제되며 화면 전체를 채우는 추상적 문양으로 변모한다. 개별 인물의 서사는 소거되고 오직 신체가 이루는 반복 패턴만이 강조되는 이 연출은, CG라는 첨단 기술 없이도 신체를 기하학적 패턴의 재료로 환원할 수 있음을 증명한 선구적 사례이다. 우측은 같은 감독의 카일리 미노그 <Come Into My World>(2002)로, 동일한 인물이 루프를 반복할수록 화면 안에 누적되어 최종적으로 네 명의 신체가 동시에 공존한다. 이 구조는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허물면서 반복 그 자체를 시각적 권력으로 전환한다. 두 작품은 버클리에서 K-pop으로 이어지는 도상학적 계보의 결정적 중간 고리로서, 신체 패턴화의 충동이 기술적 조건과 무관하게 지속되어 온 시각 문화의 심층적 욕망임을 드러낸다. 디지털 영상 기술의 발전은 버클리가 물리적 카메라 워킹으로 구현했던 만화경 미학을 무한한 가상 공간으로 확장시켰다. 복제된 신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인간 관절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선 정교한 일치감을 보여줄 때, 관객은 기이한 황홀경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K-pop이 단순한 댄스 음악을 넘어 하나의 시각적 건축물로 기능하게 만드는 핵심 동인이다.
2-3 집단 신체의 동아시아적 계보: 규율과 조화의 미학
K-pop의 군무 미학은 서구의 스펙터클 전통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특유의 집단주의적 신체 문화와 규율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20세기 초 일본의 다카라즈카(Takarazuka) 가극단은 엄격한 군대식 훈련과 도제 시스템을 통해 개개인의 개성을 통일된 형식미 속에 용해시키는 집단적 신체의 전형을 제시하였다[17]. 이는 서구 발레나 현대무용이 개인의 표현력과 서사를 중시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전체의 조화(和)와 위계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동아시아적 근대성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이러한 집단 미학을 연습생 제도라는 통제·육성 시스템을 통해 가장 극단적이고 완성도 높은 형태로 내면화하였다. 수년간의 훈련 기간 동안 멤버들의 신체는 동일한 리듬·각도·습관을 공유하도록 재설계된다. 이렇게 완성된 정밀 동기화 군무(이하 칼군무)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정의한 순종하는 신체(Docile Bodies)의 미학적 정점에 해당한다[18]. 권력이 신체를 세밀하게 감시하고 훈련함으로써 유용한 도구로 변모시킨다는 푸코의 분석은, K-pop 군무가 권력의 작동을 화려한 예술적 결과물로 치환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데 유효하다.
그림 4는 K-pop 군무가 집단 신체의 미학을 발전시켜 온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좌측의 두 이미지는 SUPER JUNIOR의 <Sorry, Sorry>(2009) 퍼포먼스로, 반복 가능하고 직관적인 동작 구조를 통해 군무를 K-pop의 대표적 시각 언어로 정착시킨 사례이다. 다수의 멤버가 동일한 리듬과 각도로 수행하는 동작은 개별 퍼포머보다 집단의 동기화 자체를 시각적 쾌락의 대상으로 전환하였으며, 이후 K-pop 군무의 기본 문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우측의 세 이미지는 PRODUCE 101의 <Pick Me>(2015) 무대로, 집단 신체의 규모와 시각적 스펙터클이 극대화된 사례를 보여준다. 100명에 가까운 연습생이 동시에 참여한 대형 구성은 개별 신체를 하나의 거대한 집합체(collective body)로 조직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하학적 배열을 통해 집단 그 자체를 시각적 대상으로 전환한다. 즉 <Sorry, Sorry>가 군무의 대중적 문법과 집단 동기화의 원형을 제시하였다면, <Pick Me>는 이를 초대형 집단 퍼포먼스와 스펙터클의 차원으로 확장한 사례이다. 이 계보는 단순한 미학적 유사성에 머물지 않는다. K-pop 산업에서 반복 동작의 정밀한 동기화는 우연성과 개별성을 제거하고 예측 가능한 움직임의 데이터 구조를 생산한다. 이때 군무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디지털 안무(Digital Choreography)로 기능하며, 숏 단위로 분절된 카메라 편집과 CG 연출은 신체 움직임을 데이터화된 시각 패턴으로 변환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 된다. 결국 K-pop 군무는 단순히 집단적 동작의 조합이 아니라, 신체를 특정한 질서 속에 배열하고 관객의 시선을 통제하는 현대적 시각 장치라 할 수 있다.
Ⅲ. K-pop 군무의 시각 권력 구조
3-1 알고리즘적 신체와 디지털 안무의 개념화
본 연구에서 사용하는 주요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알고리즘적 신체(Algorithmic Body)란 K-pop 군무 훈련을 통해 신체 움직임이 데이터화된 패턴으로 재구성된 신체, 즉 인간의 유기적 동작이 숏 편집·CG 연출과 결합하여 예측 가능한 시각 데이터로 기능하는 신체를 지칭한다. 시네마틱 바디(Cinematic Body)는 인간 신체가 현실 공간의 물리적 존재를 넘어 영상 프레임 내부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시각적 객체로 최적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디지털 안무(Digital Choreography)는 반복 동작의 정밀한 동기화를 통해 우연성과 개별성을 제거하고, 숏 단위로 분절된 카메라 편집과 CG 연출이 결합하여 신체 움직임을 데이터화된 시각 패턴으로 변환하는 안무 방식을 뜻한다. 이 세 개념은 이후 III장, IV장, 결론에 걸쳐 분석의 핵심 도구로 사용된다.
3-2 개인의 소거와 패턴의 탄생
K-pop 군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수많은 인원이 단일한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고도의 동기화(synchronization)에 있다. 이 과정에서 각 멤버의 고유한 신체적 특질과 개별 주체성은 전체 대형의 완성이라는 목적 아래 의도적으로 소거된다. 신체는 더 이상 개인의 서사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안무가가 설계한 기하학적 궤적을 수행하는 하나의 기하학적 구성 단위로 환원된다. 이러한 신체의 기호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개별 인물의 매력보다 집단이 만들어내는 질서의 미학에 몰입하게 만든다. 패턴화 과정 속에서 신체는 더 나아가 시네마틱 바디(Cinematic Body)로 재구성된다. 이는 인간 신체가 현실 공간의 물리적 존재를 넘어 영상 프레임 내부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시각적 객체로 최적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K-pop 군무는 클로즈업, 부감 쇼트, 롱테이크 등의 영상 문법과 결합하면서 신체 자체를 하나의 움직이는 그래픽 요소처럼 활용한다.
3-3 이중 구조의 작동 메커니즘
K-pop 군무가 선사하는 미적 경험의 핵심은 전체주의적 공포(totalitarian fear)와 숭고의 황홀경(ecstasy of the sublime)이라는 두 감각이 동시적·중층적으로 작동하는 이중 구조에 있다. 두 감각은 시간적으로 분리되기보다 단일한 시각적 충격의 순간에 동시에 작동한다. 칸트의 수학적 숭고 개념에 따르면, 지각 능력이 압도당하는 순간의 위축(공포)은 이성이 거대한 질서를 파악하며 도래하는 고차원적 쾌락(황홀경)의 구조적 전제 조건이다[14]. 즉 공포는 황홀경을 소거하는 것이 아니라 황홀경의 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기능한다.
이중 구조는 리펜슈탈의 전체주의 스펙터클과 비교할 때 K-pop만의 차별성을 드러낸다. 리펜슈탈의 영상에서 공포와 황홀경은 국가 권력이라는 단일한 기표 아래 수렴되어 관객의 정치적 순응을 이끌어낸다. 반면 K-pop 군무에서는 이 이중 구조가 문화상품 소비의 맥락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관객의 반응은 수동적 순응에 고정되지 않는다. K-pop 팬덤은 군무의 세부 동작을 분석하고 모방하여 커버 댄스를 생산하고, 직캠 분석과 SNS 재생산을 통해 이 시각 권력 구조를 능동적으로 전유하고 재맥락화한다. 이처럼 이중 구조의 수용 방식은 관객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며, 이에 대한 심층적 검토는 결론에서 후속 과제로 논의한다.
3-4 대칭과 반복이 만드는 심리적 위계
군무의 구조적 핵심인 대칭(symmetry)과 반복(repetition)은 단순한 미적 장치를 넘어 강력한 심리적 위계를 형성한다. 무대의 중심(center)을 축으로 전개되는 방사형 또는 피라미드형 대형은 시각적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며, 센터에 위치한 인물을 절대적 주체로 격상시키는 효과를 낸다[19]. 군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초정밀 동기화(hyper-synchronization)는 K-pop 특유의 시각 권력을 극대화하는 핵심 장치이다. 이 상태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 신체가 아닌 자동화된 시스템을 목격하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만든다. 개별 멤버의 차이는 최소화되고 집단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 혹은 기계적 인터페이스처럼 인식된다. 초동기화는 신체의 개별성을 제거하는 동시에 집단의 압도적 존재감을 강화하는 이중적 효과를 생성한다.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질서의 정점을 추종하게 되며, 반복되는 동작은 최면적 효과를 통해 해당 질서에 순응하도록 유도한다[18].
3-5 카메라 시점과 감시의 시각 구조
K-pop 군무의 시각 권력은 안무의 배열에서만 생성되지 않는다. 카메라의 시점 구조 역시 신체를 통제된 패턴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드론 쇼트(drone shot), 버드아이뷰(bird's-eye view), 롱테이크(long take)는 군무의 기하학적 질서를 극대화하며 개별 신체를 집단 패턴으로 환원하는 효과를 강화한다. 이러한 시점은 푸코가 논의한 판옵티콘(Panopticon)의 시각 구조와 연결된다[18]. 높은 위치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 장치를 넘어, 질서를 감시하고 재배치하는 권력적 시선으로 기능한다. 관객은 카메라가 제공하는 전지적 시점을 통해 군무의 완결성을 감상하는 동시에 그 질서 안으로 심리적으로 편입된다. 현대 K-pop 뮤직비디오는 스테디캠(Steadicam), 모션 컨트롤 카메라(motion control camera), 디지털 스티칭(digital stitching) 기술 등을 활용하여 인간의 육안으로는 불가능한 유동적 시점을 구현한다. 이로써 군무는 카메라와 CG 기술이 공동으로 구축하는 통제된 시각 시스템으로 확장된다. 현대 K-pop 콘텐츠는 모바일 환경에서의 소비를 전제로 제작된다는 점에서 기존 영화적 시각 체계와 차이를 보인다. 세로형 숏폼 콘텐츠, 직캠(fancam), 퍼포먼스 비디오(performance video)는 관객이 군무의 디테일한 동기화 과정을 반복적으로 감상하도록 유도하며, 이는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 안에서 높은 재생성과 확산성을 획득한다. 결과적으로 카메라는 플랫폼 알고리즘과 결합된 디지털 시선 체계(Digital Visual Regime)의 일부로 기능하게 된다.
Ⅳ. CG 공간의 확장과 무한 스펙터클
앞서 논의한 알고리즘적 신체, 초동기화, 공간화된 권력이라는 세 구조는 실제 K-pop 콘텐츠 안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다. CG 기반 공간 확장은 단순한 배경의 확장이 아니라, 권력이 공간 안에 배치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공간화된 권력(Spatialized Power)의 구축 과정이다. 디지털 공간은 더 이상 중립적 무대가 아니라 신체의 위계와 시선을 설계하는 권력 장치로 기능한다. K-pop 뮤직비디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대한 계단 구조, 무한 복제 복도, 초현실적 광장 등은 신체를 특정한 질서 속에 배열하며 시각적 위계를 강화한다.
4-1 유한 공간에서 무한 공간으로: 디지털 무대의 존재론적 변화
전통적인 퍼포먼스가 물리적 무대라는 유한한 경계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현대 K-pop은 CG와 VFX(Visual Effects) 기술을 통해 공간의 개념을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과거의 뮤직비디오가 실물 세트의 물리적 크기에 종속되었던 것과 달리, 디지털로 구축된 가상 공간은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사막, 끝없이 펼쳐진 우주, 중력이 무시된 초현실적 건축물 등을 배경으로 삼는다. 이러한 공간의 확장은 군무가 지닌 시각적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에스파의 광야(Kwangya)와 같은 가상 세계관의 도입은 무대를 단순한 배경에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적 공간으로 격상시켰다. 무한한 공간 속에서 전개되는 일사불란한 군무는 관객으로 하여금 신체가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아티스트의 카리스마와 지배력을 강화하는 시각적 기제로 작용한다. 유한한 신체가 무한한 공간과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은 현대 디지털 콘텐츠가 지향하는 몰입형 미학의 핵심이다.
4-2 무한 복제된 신체와 기술적 아우라의 생성
디지털 기술은 단수의 신체를 복수의 패턴으로 변모시키는 수준을 넘어, 신체 그 자체를 디지털 데이터로 복제하고 증식시킨다[9].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에 예술 작품의 아우라(Aura)가 상실된다고 진단하였다. 그 근거는 아우라가 '지금 이 순간, 이 장소'라는 일회적 현존성과 의식적(ritual) 맥락에 기반하기 때문이며, 기술 복제는 바로 이 일회성을 해체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K-pop의 무한 복제 공간에서는 이 논리가 역전된다. 복제된 신체 이미지는 의식적 맥락을 상실하는 대신 벤야민이 말한 전시가치(exhibition value)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며, 복제 자체가 생성하는 압도적 질서가 새로운 형태의 경외감, 즉 기술적 아우라를 산출한다. 뮤직비디오 내에서 수십·수백 명으로 복제된 멤버들의 이미지는 대중의 신체가 기하학적 장식물로 전락한다는 크라카우어의 진단[10]을 디지털 환경에서 극단적으로 실현하며,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허무는 하이퍼-리얼의 미학을 완성한다. 신체의 무한 복제는 개별 멤버를 하나의 거대한 건축적 구조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는 버스비 버클리의 만화경 미학이 디지털 환경에서 극단적으로 진화한 형태이다[13]. 신체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문양으로 기능할 때, 관객은 개별 인물의 매력을 넘어선 시스템적 완벽함에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신체는 인간적 주체성을 탈피하여 기술에 의해 통제되고 증폭되는 디지털 기호로 존재하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신체는 포스트휴먼 퍼포먼스(Post-human Performance)의 단계로 진입한다. 인간의 실제 움직임과 디지털 보정, 가상 카메라, 복제 효과가 결합하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불분명한 하이브리드 신체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 신체가 어떻게 기술 시스템 내부로 편입되고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4-3 세 가지 공간 유형의 권력 문법: 초월, 디스토피아, 하이퍼-리얼
그림 5는 K-pop 뮤직비디오에서 반복적으로 구현되는 세 가지 공간 유형을 나란히 제시한다. 좌측의 BLACKPINK 〈How You Like That〉(YG Entertainment, 2020)은 초월적 공간의 전형으로, 거대한 신전과 우주적 배경 속에서 멤버들의 신체가 CG로 증식되며 신성함과 절대적 위계를 강조한다. 중앙의 BTS 〈ON〉(HYBE, 2020)은 디스토피아적 공간의 사례로, 댐이라는 거대한 인공 구조물 앞에서 수백 명의 집단 신체가 건축적 성벽을 이루며 혼돈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통제력을 시각화한다. 우측의 aespa 〈Armageddon〉(SM Entertainment, 2024)은 하이퍼-리얼 공간의 극단을 보여주는데, 물리 법칙이 완전히 무시된 공간 안에서 신체가 상하 반전·복제되어 만화경적 패턴을 이루며 인간을 초월한 디지털 기호로서의 신체를 구현한다. 세 사례는 CG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신체에 서로 다른 권력적 의미를 부여하는 능동적 장치임을 보여주며, K-pop 산업이 그룹별 정체성에 따라 공간 권력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음을 방증한다[19]. 각 공간 유형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초월적 공간은 순백의 빈 공간이나 거대한 신전, 우주 등을 배경으로 하며 신성함과 절대적 위계를 강조한다. 디스토피아적 공간은 폐허가 된 도시나 거대한 공장 설비 등을 활용하여, 거친 환경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군무를 통해 강력한 통제력과 생존의 의지를 시각화한다. 하이퍼-리얼 공간은 물리 법칙이 완전히 무시되는 공간으로, 신체가 공중에 뜨거나 무한히 증식하는 연출을 통해 인간을 초월한 포스트-휴먼(Post-human)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이러한 공간 유형화는 K-pop 콘텐츠가 공간의 성격에 맞춰 신체의 권력을 어떻게 배분하고 연출하는지를 보여준다. 관객은 설계된 공간 속에서 군무를 관찰하며 아티스트가 구축한 세계관의 질서에 심리적으로 동기화된다. CG 공간의 확장은 군무의 시각적 스케일을 키우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신체에 다층적인 권력적 의미를 부여하는 핵심적인 미학적 장치이다.
Ⅴ. 사례 분석
5-1 BLACKPINK: 초월적 공간과 신전화된 신체의 권력
BLACKPINK는 K-pop 걸그룹 중 가장 광대한 규모의 CG 초월 공간을 구현한 사례로,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신체를 신성한 질서의 중심으로 격상시키는 시각 전략을 일관되게 구사한다. <How You Like That>(2020)은 거대한 힌두교 신전과 우주적 배경을 결합하여 멤버들을 문명과 신화의 정점에 위치시킨다. CG로 증식된 신체 이미지들이 신전의 기하학적 구조와 결합하는 장면은 리펜슈탈이 군중의 대열로 구현했던 집단적 기념비성을 단 네 명의 신체만으로 압축 재현하는 효과적인 시각적 전략이다[9]. 오프닝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버드아이뷰 쇼트로 빠르게 하강하며 신전의 방사형 구조와 멤버들의 대형을 한 프레임 안에 겹쳐 보여준다. 네 명의 멤버는 신전 중심축을 기준으로 정확한 좌우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고, CG로 증식된 동일 신체 이미지가 신전의 기하학적 격자를 채운다. 이 장면에서 신체는 건축 구조물의 일부로 통합되어 기념비성을 획득한다. BLACKPINK의 초월적 공간 전략은 신체를 단순한 퍼포머가 아닌 신화적 아이콘으로 격상시키는 데 있다. 광활한 공간 속에서 소수의 신체가 대칭적 대형으로 배치되는 연출은, 역설적으로 인원의 부재를 통해 개개인의 존재감을 극대화한다. 이는 집단 신체의 패턴화가 군집에 의한 압도가 아니라, 소수의 완벽히 통제된 신체가 무한 공간과 대결하며 생성하는 숭고의 방식으로도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13]. BLACKPINK의 사례는 초월적 공간이 신체에 부여하는 권력이 양적 군중 스펙터클과 무관하게 공간의 설계와 신체의 배치만으로도 강력하게 작동함을 증명한다.
5-2 BTS: 폐허 공간의 건축화된 신체와 역사적 숭고
BTS의 <ON>에서 나타나는 군무는 광활한 자연이나 디스토피아적 폐허 공간을 배경으로 신체를 건축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ON>의 키네틱 매니페스토 필름은 댐이라는 거대한 인공 구조물 앞에서 수백 명의 댄서와 함께 전개되는데, 멤버들의 신체는 지형지물과 결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시각적 성벽을 구축한다. 이는 리펜슈탈이 군중의 대열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집단적 기념비성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9]. 핵심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중저각(low-angle)에서 시작해 급격히 부감으로 전환하며 댐 구조물—멤버—무용수 집단이 형성하는 수직적 위계를 한 프레임 안에 담는다. 멤버들은 댐의 계단식 구조 위에 피라미드형으로 배치되며, 수백 명의 무용수는 댐 아래 광장을 격자 대형으로 채운다. 이 장면에서 신체들이 이루는 집단 대형은 댐이라는 물리적 건축물과 동일한 질감의 시각적 구조물로 기능한다. BTS의 군무는 단순한 동작의 일치를 넘어, 신체들이 모여 거대한 물리적 힘을 형상화하는 데 집중한다. 폐허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집단 신체는 무질서한 환경과 대비되어 더욱 강력한 통제력과 질서의 미학을 발산한다. 이는 칸트의 역동적 숭고와 연결되며, 거대한 외부 환경(폐허, 광야)에 맞서 집단적 질서를 유지하는 신체들의 모습에서 관객은 도덕적·역사적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14]. BTS는 신체를 패턴화하되, 이를 공간을 장악하는 건축적 요소로 활용함으로써 시각적 권력을 획득한다.
5-3 에스파(aespa): 디지털 도플갱어와 하이퍼-리얼 공간의 시뮬라크르
에스파는 K-pop 역사상 가상 세계관과 디지털 기술을 가장 유기적으로 결합한 사례로, 이들의 퍼포먼스는 신체가 데이터화되고 증식되는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Armageddon>(2024)은 광야(Kwangya) 세계관 속에서 물리적 제약이 완전히 소거된 무한 공간의 전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멤버들은 자신의 디지털 도플갱어인 ae-에스파와 함께 군무를 수행하는데, 이는 인간의 신체와 디지털 데이터가 대등한 층위에서 패턴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에스파 군무 미학의 핵심은 신체의 무한 복제와 비인간적 대칭이다. 가상 공간 속에서 멤버들의 형상은 수십 개로 증식되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는 기하학적 오너먼트로 기능한다. 이는 장 보드리야르(J. Baudrillard)가 언급한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가상인 시뮬라크르(simulacrum)의 구현이며[20], 관객은 원본 멤버와 복제된 데이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에서 원본성의 해체가 낳는 새로운 형태의 기술적 경외감을 경험한다. <Armageddon>(2024)의 클라이맥스 시퀀스에서는 광야 세계관의 종결편으로서 신체가 상하 반전·복제되어 만화경적 패턴을 이루는 하이퍼-리얼 연출이 최고조에 달한다. 카메라는 360도 회전하며 물리 법칙이 완전히 무시된 공간을 제시하는데, 멤버 신체는 무한히 분열·증식되어 화면 전체를 만화경적 패턴으로 뒤덮는다. 각 복제 신체의 움직임은 미세한 시차를 두고 동기화되어, 기계적 정밀함과 유기적 파동감을 동시에 구현한다.
세 그룹의 사례를 종합하면, BLACKPINK는 소수의 신체를 신전화된 초월 공간 안에 배치하여 신화적 권력을 획득하고, BTS는 집단 신체를 물리적 구조물과 결합하여 건축적·역사적 기념비성을 구현하며, 에스파는 신체 자체를 디지털 데이터로 증식시켜 하이퍼-리얼의 기술적 아우라를 생성한다. 세 전략 모두 CG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신체에 서로 다른 권력적 의미를 새기는 핵심 장치로 기능함을 보여주며, K-pop 산업이 그룹별 정체성에 따라 공간 권력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Ⅵ. 결론: 이중 구조의 미학
본 연구는 K-pop 군무를 시각 권력이 작동하는 기하학적 패턴이자 디지털 기술로 확장된 현대적 숭고의 미학으로 정의하고, 그 구조를 분석하였다. 세 가지 연구 문제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K-pop 군무의 도상학적 계보를 추적한 결과, 레니 리펜슈탈의 전체주의적 기하학 미학과 버스비 버클리의 만화경적 안무가 지닌 스펙터클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7],[11]. 단, 이 연구가 입증하는 것은 제작자의 의식적 참조가 아닌 시각 형식의 구조적 반복이며, 동일한 시각 문법이 전체주의 선전영화와 K-pop 뮤직비디오라는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적·산업적 맥락에서 재현된다는 사실 자체가 시각 권력의 구조성을 드러낸다.
둘째, 군무의 대칭성과 반복성이 창출하는 시각 권력 구조는 관객에게 통제된 질서가 주는 안정감과 압도적 스펙터클이 주는 숭고미를 동시에 제공하는 이중 구조를 지닌다[14]. 센터를 정점으로 한 위계적 대형은 시각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시스템의 완벽함에 심리적으로 순응하게 만드는 시각적 통제 기제로 작동한다[18]. 이 이중 구조는 관객의 사회문화적 맥락—팬덤 참여 여부, 문화권, 세대—에 따라 상이한 강도로 경험되며, 팬덤은 커버 댄스, 직캠 분석, SNS 재생산 등의 방식으로 이 구조를 능동적으로 전유하기도 한다. 텍스트 분석 중심의 접근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수용 경험의 다양성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연구의 제한점으로 명시하며, 향후 팬덤 수용자 연구를 통한 보완이 필요하다.
셋째, BLACKPINK, BTS, 에스파의 사례를 통해 CG 공간이 초월·디스토피아·하이퍼-리얼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현되며, 각 유형이 신체에 서로 다른 권력적 의미를 부여함을 확인하였다[9]. 이러한 기술적 확장은 벤야민이 진단한 아우라의 상실 논리를 역전시켜, 복제와 전시가치의 극대화를 통해 기술적 아우라를 새롭게 산출하며 포스트휴먼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학술적 의의는 K-pop의 시각적 성공 요인을 단순한 안무의 화려함이 아닌, 신체를 패턴화하여 권력적 질서 속에 배치하고 이를 첨단 기술로 증폭시킨 결과물로 해석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디지털 콘텐츠 영상미학 분석에 있어 기술·미학·정치미학적 관점을 통합하는 비평적 틀을 제시한다. 다만, 이 연구는 주로 대형 기획사의 아티스트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더하여 텍스트 분석 중심의 접근으로 인해 수용자의 실제 심리적 반응을 경험적으로 검증하지 못하였다는 제한점을 가진다. 향후 연구에서는 중소 기획사 및 인디 신에서의 신체 운용 방식, 나아가 AI 기술이 개입된 가상 아이돌의 군무 미학에 대한 비교 연구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K-pop 팬덤의 능동적 전유 방식에 대한 수용자 연구도 중요한 후속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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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2000년:홍익대학교 (미술학사)
2007년: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석사)
2024년: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박사)
2016년~현 재: 가톨릭관동대학교 CG디자인전공 부교수
※ 관심분야:CG, VFX, Motion Graphics, VR, AR 디지털영상, 역사연구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