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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Digital Contents Society - Vol. 23 , No. 2

[ Article ]
Journal of Digital Contents Society - Vol. 23, No. 2, pp. 267-274
Abbreviation: J. DCS
ISSN: 1598-2009 (Print) 2287-738X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28 Feb 2022
Received 02 Dec 2021 Revised 18 Jan 2022 Accepted 07 Feb 2022
DOI: https://doi.org/10.9728/dcs.2022.23.2.267

한국 CF CG 도입에 관한 역사적 고찰
나소미
가톨릭관동대학교 CG디자인학과 교수

A historical Study on the Introduction of CF CG in Korea
So-Mi Nah
Professor, Department of Computer Graphics Design, Catholic Kwandong University, Gangneung 25601, Korea
Correspondence to : *So-Mi Nah E-mail: nahsomi@c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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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CG는 디자이너의 기획력과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여 제작하는 제3의 영상으로, 대부분의 분야 전반에서 상상의 이미지 표현이 가능한 매체로 현재도 여전히 발전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CG에 관한 연구는 CG의 기술 적용 사례와 상대적으로 먼저 발전된 국외의 CG 영상의 종류 서술 및 사례 분석에만 치중되어 있었으며, 국내 CG의 역사적 의미는 간과됐다. 이 논문은 선행 연구의 보완을 위해 한국 초기 CF CG로 대상을 선정하여,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사회적 현황, CF 포스트프로덕션 제작자들의 인터뷰, 대표작의 사례 분석으로 구성하였다. 역사연구의 주제는 과거지만, 기원과 범위를 밝히고 현재를 되돌아본다는 점과 이를 통해 변화된 현재가 미래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현실 참여적이자 미래지향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한국 CF CG의 아카이브로서 현재의 객관적 직시를 위한 역사적 자료와 학문적 체계를 제공하는 의의를 갖는다.

Abstract

CG is the third video produced by utilizing the planning power of designers and computer technology, and it is still developing as a medium that can express imaginative images in most fields in general. So far, research on CG in South Korea has focused only on the description and case analysis of CG technology application cases and the types of foreign CG images that have developed relatively earlier, and the historical meaning of Korean CG has been overlooked. This paper was selected by the early Korean CF CG to supplement previous research, and consisted of social conditions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interviews with CF post-production producers, and representative case analysis. The theme of historical research is the past, but it can be said to be a reality-participatory and future-oriented work in that it reveals the origin and scope and looks back on the present, and that the present that has changed through this reflects the future. This paper has the significance of providing historical materials and academic systems that can objectively look at the present as an archive of Korean CF CG.


Keywords: Computer Graphics, Korean CF, Historical Study, Post-Production, Digital Image
키워드: 컴퓨터그래픽, 한국 CF, 역사연구, 포스트프로덕션, 디지털영상

Ⅰ. 서 론

디지털 영상시대인 현재, CG(Computer Graphics) 작업을 거치지 않은 영상 이미지가 없을 정도로 CG는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고, CG를 통해 시대의 최첨단 기술과 나라의 IT(Information Technology) 기술력을 가늠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앤듀르 달리의 말대로 기술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시대[1]가 도래한 지 오래다. 학자들이 영상의 사실주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영상은 이미 3D 컴퓨터애니메이션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었다[2]는 마노비치의 말처럼 디지털영상의 핵심이자 컴퓨터애니메이션으로 통용될 수 있는 넓은 범위의 CG는 전 세계적으로 필수적인 영역이 되었다. 진정한 변화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3D CG와 합성 이미지의 도입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러한 기술과 함께 보는 이는 시뮬레이션 된 3D 공간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기존의 환영적인 시각 이미지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었다[2]. 20C에는 보다 현실과 유사한 재현의 표현 기술이 빠른 속도로 대체되었고, 그런 기술의 효과를 경험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끊임없는 시차가 생겨났다. 상상만으로 존재했던 것이 현실화됨에 따라, 보는 이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던 이러한 CG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술력과 표현력이 증진되었고, 이제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분간하기조차 모호해진 시점에 봉착했다. CG디자이너들은 보는 이의 기대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새로운 이미지들을 찾기 위한 압력과 함께 첨단기술에 대한 의존도도 증가하고 있다.

오늘날 CG는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고, 활용 범위가 다양해진 1970년대 초반부터였다[3]. 현재 국내 CG의 위상이 세계적인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CG의 역사연구가 부재한 실정이다. 역사기술기(Historiography)와 기억연구(Memory Studies) 등 역사의 접근들은 지난 수십 년간 학문적인 관심을 받아왔다[4]. 저자는 한국 CG디자인과 기술의 외적 성장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CG 도입 과정에 관한 과거의 이해로부터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서 한국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반영하고 있는 한국 CF(Commercial Film) CG 역사에 관해 연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이 논문은 한국 CF CG 도입 시기의 역사에 관련된 사회문화적 관점을 통해 연구방법론을 연구‧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CG의 디자인적 관점과 기술의 발전 관점으로 역사를 연구‧교육하는데 활용할 수 있는 국내 CF CG 역사 연표를 기록하여 국내 CF CG의 형성과 활성화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CG의 과거를 조명하는 것은 미디어의 관점에서 과거의 흔적을 되돌아보고, 현재를 직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한국 CG가 사회문화, 기술제작 환경의 변화와 함께 발전되었다는 점, 한국 CF CG 형성에 성찰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 기대하며, 이러한 고찰은 급변하는 시대에 한국의 CG에 발전에 대해 고민하는 CG디자이너와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CG에 대한 시각을 확장해주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초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Ⅱ. 본 론
2-1 새로운 영상 표현으로써 CF CG

1995년 한국 방송개발원의 연구보고서[5]에서 관점의 차이를 두어 다음과 같이 방송 CG와 영화 CG, CF CG를 구분해서 설명하였다. 방송 CG는 일과성이므로 요구하는 퀄리티가 낮아도 되고, 국내 실정으로는 제작 기간도 짧으므로 더욱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반면에 CF CG는 반복해서 이용하므로 방송 CG보다는 품질이 우수해야 하고, 특히 영화 CG는 화면이 커지고 그에 따라 해상도가 증가하므로 최고의 품질이 요구되지만, 애니메이션의 정교함으로 따진다면 CF CG가 더욱 정교하다. 또한, 방송사는 일반 CF 단가와 비교하면 절반 정도의 가격을 제시하므로 프로그램 타이틀에서 CF CG에서와 같은 완성도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단가 측정이 높은 CF를 작업하는 포스트프로덕션의 제작자는 방송국의 CG 제작자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퀄리티를 요구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고, 직설적으로 당시의 CF에 대한 표현을 적절히 하였는데, 광고에서는 매우 높은 CG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며, '시선을 사로잡는 영상'을 만들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하므로, 평범한 CG는 자극이 약하다[5]고 표현하였다. 이처럼 국내의 포스트프로덕션은 영화보다는 CF에서 먼저 CG가 널리 사용하고 있었다.

국내 광고 산업은 1980년대 컬러 TV 방송 시작과 함께 본격적으로 형성하였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상 광고는 ‘대표적인 시각 이미지 지배 장치’로서 대중들의 정서와 생활양식을 좌우하게 되었다[6]. 이처럼 한국의 CG는 CF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일보[7]는 CG가 모든 상상을 영상화시킬 수 있다며, 이는 항상 새로워야 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요구하는 광고업계에 뿌리를 내린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고 표현하였다. 이처럼 초창기 CF는 새로운 영상 표현을 선호하는 상업용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고정하기 위해 화려한 CG를 사용하게 되었다. CF는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분야로 화재를 환기시키는 새로운 영상 표현은 제작 담당자가 선호하는 부분으로, 당시 새로운 시각을 불러일으켰던 CG는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만했다. CF 포스트프로덕션의 편집국장 장선일은 1990년대 CF는 현재와는 달리 국내 영상을 선도하였으며, 15초 동안 시선을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이미지를 연구하며 작품성을 강조하며, 편집했다고 하였다.

“그때는 광고를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카피는 한 줄 이었고, 그것도 자막으로만 표현할 정도였죠. 이것은 즉, 감성적 광고라는 것이고, 이모션에 모든 것을 맡겼죠. 그 이모션으로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마르죠’라고 하면, ‘마르죠’에서 오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아니고, ‘마르죠’ 자체가 형이상학적으로 ‘나한테 마르죠가 왔다’라는 것이에요. 30초 광고 내내 음악만 나오는 광고도 있었죠. 그 시절에는 광고도 하나의 콘텐츠였죠. 광고를 보는 동안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을 주었어요. 그렇기에 TV에서 광고가 나오면, 어린아이들도 한 편을 집중해서 보았죠. 그만큼 영상미에 치중했었죠. CG실에서는 주로 에딧박스(Edit box)와 헨리(Henry)를 활용해서 색감을 고급스럽게 바꾸었고, 편집의 시간 조절 방법으로 스트레치를 이용했고, 화면에 불필요한 요소를 지우고, 모델을 보정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요즘 광고는 이미지로 다가와 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형이하학적으로 원초적이며, 매뉴얼이라고 생각해요(장선일 인터뷰, 2021.06.04.).”

박영민 씨는, 광고는 15초 안에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CG를 활용하여 환상적인 영상을 만들 수 있다[8]고 하였다.

국내에서 CG를 이용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것’은 방송과, 영화보다는 CF에서 먼저 발전되기 시작했다. 이는 상업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기업 이미지와 판매를 위한, ‘시선의 고정 장치’ 혹은 ‘기억의 각인 장치’라고 표현할 수 있다.

2-2 국내 CF 발전의 사회적 맥락

CF가 국내에서 발전하게 된 계기를 사회적 맥락으로 살펴보면, 1981년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설립 당시에는 ‘오리콤’, ‘연합광고’, ‘제일기획’, ‘나라기획’과 같은 4개 사만 방송 광고 대행을 인정받았으나 이후에 방송 광고 대행 자격을 갖춘 광고회사들이 늘어났다[9]. 메가 이벤트인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1986년)’과 ‘서울 올림픽대회 (1988년)’를 거쳐 한국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광고비가 2조 원으로 늘어났고, GNP 대비 1%를 능가함으로써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1987년 6·29선언과 함께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어 인쇄 매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TV 보급률도 가구당 70%에 이르렀다. 또한, 문화부(문화체육관광부의 전신)에 광고과가 신설되었으며, 대통령선거에서 TV 광고가 처음으로 허용되었고, ‘제1회 한국광고대회’를 개최했다. 광고회사와 독립제작사로 이원화되어 경쟁 관계에 있던 광고는 1985년을 전후로 해서 기획은 광고회사에서 맡고 제작은 프로덕션에서 맡는 식으로 협력 관계로 바뀌었다[9]. 이와 함께 광고 제작환경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나라 광고계는 컬러 방송에 대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VTR-CM에서 필름으로 급격히 변화해야 했다. 이에 따라 완벽한 준비를 하지 못했던 광고 제작 업계는 1981년부터 4년 동안 KBS-TV와 MBC-TV의 제작 시설에 의존해 VTR-CM을 제작해야 했다. 이에 따라 자체적인 시스템 확보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CG의 3D 영상이 해외에서 개발되자, 삼성의 제일기획과 금성사의 LG애드는 이를 응용한 기업광고를 제작해 광고 표현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 광고들은 3D 모델링과 매핑, 리깅, 애니메이팅, 카메라, 크로마 합성기법 등 CG를 응용함으로써 새로운 영상 표현기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9].

컴퓨터 장비들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기 전, 제일기획이 기획하고, ‘리듬 앤드 휴스’ (Rhythm & Hues) 사에 의뢰하여 ‘Cranston Csuri Production’ (CCP)에서 제작한 1987년 삼성전자의 기업 PR 광고 <휴먼테크(Human-Tech)>[그림 2]와 LGAD와 일본 ‘덴츠’ (DENTSU, 株式会社電通) 사의 기획과 ‘링크’ (Toyo Link) 사의 기술로 제작된 금성사 (현 LG전자)의 <테크노피아(Technopia)>[그림 1]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IT 기술을 3D의 가상 환경을 제작하여, 실제 인물과 3D 모델링한 이미지를 합성해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리듬 앤드 휴스’ 회사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2012)>의 시각효과를 담당하고, CG 영상미의 진수를 보여준 후, 인력 비용 난으로 파산보호 신청[11]을 한 회사이다. 또한, 당시 CG 제작사였던 ‘Cranston & Csuri’ 는 미국 ABC 방송사의 스테이션 아이디를 CG로 제작하는 등 컴퓨터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였다. 1991년 당시 KBS 뉴스[14]는 ‘CG는 30초짜리 광고 1편이 1억 원을 넘을 만큼 부가가치가 높으며, 현재 1조 5천억원 가량인 세계 시장 규모가 매년 50% 이상씩 늘어나고 있고,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이 광고는 모두 외국에서 사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비록 해외의 CG 기술로 제작된 영상이지만, 이는 당시 CG 불모지였던 한국 CF에 본격적으로 CG가 도입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 시기부터 사람들은 CF를 보는 눈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Fig. 1. 
Technopia, 1987[10]


Fig. 2. 
Human-Tech, 1987[15]

최범[6]은 이 광고[그림 2]처럼 CG가 기존의 시각 매체와 다른 점은 이미지의 무한한 확대가 가능하게 함으로, 시간상으로 보이는 공간적 상태가 가능하다는 점을 예로 든다. 보는 이에게 비치는 이미지란 그 자체의 완결성이 아니라, 무한히 펼쳐진 이미지들의 단편처럼 보이며, 이러한 원리는 Z축 공간과 몰핑 기법을 이용한 물체의 자유자재한 변형과 결합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모두가 중심이면서 부분으로 스쳐 지나가는 무상함을 일시적으로 느끼게 하는데, 공간과 시간을 이어주는 끊임없이 시선을 잡아주는 이미지의 전개는 숭고함으로 승화시킨다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이미지의 연속성, 즉, 컴퓨터 안에서 키 프레임으로 생성해내는 Z축을 포함한 움직임의 연속성을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이후 방송의 타이틀 시퀀스에서 자주 사용되었고, 현재에도 모션그래픽스의 카메라 무빙에도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또한, 로봇이 반도체를 역동적으로 들어 올리고, 인간의 손과 악수를 하는 장면은 후에 ‘88올림픽’ 방송 타이틀 시퀀스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미국의 ‘로봇 에이블 앤드 어소시에이츠 컴퍼니’ (Robert Abel & Company) CG 기술로 제작된[16], 삼성전자의 기업 PR 광고 <휴먼테크(Human-Tech)>는 1987년도 클리오(Clio Awards) TV 광고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18]. 제작비는 당시 돈으로 2억 5천만 원 선으로 대기업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었기에, 후원이 없다면, 국내 영화시장이 해외의 CG 영화들과 경쟁하기에는 무리였고, 국내 영화시장 자체가 자금력과 기술력이 없었다는 것이 또한 문제였다. 영화 CG는 러닝타임과 해상도의 차이로 인해 CF CG보다 더 많은 인력과 기술력을 요구했다. 이러한 한국적 상황으로 인하여 CG 기술은 영화보다는 CF에서 선두를 나타내며 발전하였다.

1983년 국도건설을 인수하고 사명과 업종을 변경하여 탄생한 현대전자는 당시 ‘가전 3사’라고 불리는 삼성, 금성, 대우에 비해 기술기업으로서의 입지가 약했기 때문에 컴퓨터와 반도체 사업에 집중하면서 첨단 기술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노력으로 광고캠페인을 전개할 필요성이 있었다.

금성사와 삼성전자에 비해 CG를 늦게 기업광고 PR에 도입한 현대전자는 한국 전통 기술의 대표적 사례[그림 3]라고 할 수 있는 거북선을 메인 주제로 하여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하게 된다. 일본 ‘Toyo Links’가 보유한 CG 기술인 메타클레이(Meta-Clay) 기술을 이용하여 바닷물이 튀길 때 물의 형상 등 유체의 흐름과 유기적인 결합을 표현함에 있어 실재감 있게 제작하였다. 메타클레이는 1980년대 초에 소개된 CG의 알고리즘(Algorithm) 개념으로 메타볼(Metaball: blobs 또는 soft objects), 메타블롭(Meta-Blob)이라고 불리기도 한다[20]. 현대전자의 거북선 편은 3D 모델링을 통한 한국적 소재의 활용은 국외 기술을 활용하기는 하였으나 국내의 정체성을 반영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Fig. 3. 
Hyundai Electronics: Turtle Ship, 1988[17]

이러한 해외 기술 광고에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는 최초의 CG 업체 ‘채널4’가 설립되었고, 1990년에는 10억에 달하는 2D 편집, 합성 장비인 헨리와 그 외 3D 장비를 갖추고 본격적으로 출발하며 ‘비손텍’이 설립되었다. 그 뒤를 이어 ‘미디아트’, ‘CGI’, ‘LIM’ (Light In Motion), ‘시네픽스’ 등의 40여 개가 넘는 CG 회사들이 생겨났다[12]. 이 시기에 대해서 이재호, 김종훈, 최민영[13]은 1993년 대전 엑스포가 끝나고 IMF 이전까지 한국 CG는 무서울 정도로 확산되었다며, 다수의 포스트프로덕션이 생겨났고, 이들은 넘쳐나는 작업 물량에 제작자들은 철야를 마다하지 않고 작업을 쳐내는 ‘CF 공장’으로 변했다고 표현하였다. 이때 주로 CF 포스트 프로덕션은 헨리를 주로 사용하여 CG 작업을 했는데, 헨리에 대해 당시(1995년)에 조선일보[7]는 ‘마술 부리는 디지털 영상 편집기’라고 표현하였으며, 이는 실제로 찍은 장면과 CG로 제작된 영상을 합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것, 편집뿐만 아니라 웬만한 효과가 가능한 마술과 같은 기계로 전 세계 50대 중 3대를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다고 하였다.

2-3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의 변화

한편, 광고 제작환경의 특징이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 변화되는 1995년에 있을 제작 시장의 완전 개방에 대비하여, 1980년대의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디지털 편집 시스템인 D-2시스템(테이프 사용)으로 미리 전환하였다. 이와 함께 1980년대 중반부터 많은 포스트프로덕션이 창립되어 첨단 시설 경쟁을 했다. 제작 인력 부족으로 스카우트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컴퓨터가 대중화되어 그 기능이 확대되자 기능직에서 디자인직으로 변화하면서, 기존의 애니메이션 제작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9]. 또한, 2-D 디지털 시스템을 통해 테이프가 없는 디지털 비선형(non-liner) 시스템으로 전환되었고, 광고 표현 영역에서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였다. <매트릭스(The Matrix, 1999)>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2001)>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놀라운 영상미가 광고 표현에서도 구체화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HDTV를 위한 고화질 전용 포스트프로덕션이 설립되기도 했다[21].

이와 같은 디지털 비선형 시스템은 1988년에 처음 소개되었고, 제작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TV 후반작업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1989년에서 1993년 사이 엄청난 발전을 거치게 된다. 1988년부터 1995년 사이에는 약 45종의 디지털 편집 시스템이 출시되었다[22]. 비선형 시스템은 편집 기술과 그래픽장비의 혁신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특수효과가 가능한 영상편집에 이용하게 되면서 기존의 필름의 마모없이, 컴퓨터에 의해 마우스의 조작만으로 편리하게 원하는 장면을 하드디스크에서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23]. 아날로그 방식에 의한 순차적(linear) 편집은 비디오 스위처(Video Switcher)와 오디오 믹서(Audio Mixer)를 비롯한 자막 제작기, 효과기와 같은 필수 주변 장비를 갖추는 데 고가의 비용이 들고, 장비 연결이 복잡하여 장비가 차지하는 공간의 비중이 크다. 반면, 디지털 방식인 비순차적(Non-linear) 편집 시스템은 필요한 장비가 모두 하나의 컴퓨터 시스템에 통합되므로 비교적 저렴한 비용과 제작환경이 간소해지며, 다양한 디지털 효과로 인해 창의적인 영상 제작이 가능하다[24].

TV-CM 전문 포스트프로덕션 관점으로 보면, 1983년 말에 국내 최초의 TV-CM 전문 포스트프로덕션인 ‘삼부’가 창립되었고, 1985년에는 ‘형보’에서 텔레시네(Telecine) 시설을 도입하여 일본보다 2년여 앞서 ‘필름에서 테이프로(F to T)’의 시스템을 구축해 광고 방송을 송출했다. 이에 따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일본 광고 업계에 의존하던 해외 작업 부문을 국내에서 소화함으로써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는 동시에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수준을 높이게 되었다[21]. 그러나 조선일보[7]는 포스트프로덕션에 대해서 광고 기획사의 기획에 따라 이미지를 제작하는 역할만 하는 곳이라고 표현하면서 CG 제작의 크리에이티브를 평가 절하하였다.

CG 프로덕션은, 1980년대 중반에는 ‘지구비디오’ (신경식), ‘컴픽스’ (김광성), ‘CClab’ (신진식), ‘DIL: Digital Image Labo’ (배종광), ‘삼부프로덕션’ (박희종), ‘김종기 컴퓨터그래픽연구소’ (김종기) 등에서 간헐적 작업을 했다. 이 시기에는 코카콜라 등 청량음료 광고는 해외 광고의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차용하여 모델만 국내 모델을 이용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사용했었다. 국내 청량음료 해태 써니텐과 일화 맥콜은 대형 콘서트를 광고에 도입하여 흥겹고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취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국제적 수준의 장비와 전문적인 인력 체제를 갖추게 된다. 1989년 8월 ‘채널4’ (이승일), 1989년 11월 ‘포스트디자인테크’ (김성수), 1989년 12월 ‘시네픽스’ (조신희), 1990년 1월 ‘포톤연구소’ (이상섭), 1990년 3월 ‘애니텔’ (최안희), 1990년 4월 ‘비손텍’ (서석균), ‘다크’, 1991년 6월 ‘디지털픽처스’ (신경식), 1992년 ‘디지털임팩트’, ‘미디아트’의 창립으로 본격화되었다[16]. 1990년대 초창기 한국의 포스트프로덕션은, ‘비손텍’, ‘엘아이엠’(LIM), ‘미디아트’(Mediart), ‘씨지아이’(CGI), ‘제로원픽처스’(Zero One Pictures) 등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디지털영상 장치인 DVD(encore), 보쉬(Bosch)사의 FGS–4500, 콴텔(Quantel)사의 페인트박스(Paint box-DPB 7000) 등이 도입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1990년대 후반에는 다양한 해외 장비의 도입과 함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1987년에 ‘LGAD’와 ‘선우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일화 맥콜 광고[그림 4]는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을 이용하여 실제 촬영된 영상 이미지와 스케치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합성하여 제작하였다. 이 광고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A-Ha의 〈Take On Me, 1986〉 뮤직비디오를 의도적으로 표절하였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당시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기법으로 떠오른 로토스코핑을 활용하여 광고 영상을 제작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는 CG 기술을 해외와 발맞춰 국내에서도 보여준 예시가 되었다.


Fig. 4. 
McCOL, 1987[19]

2-4 CG 기술의 국산화

한편, 이 시기에 국내 포스트프로덕션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과물이 생겨났고, CG가 가능한 독자적인 분야로 자리 잡게 되자 여러 업체의 투자를 받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업계 전반을 독주하던 ‘비손텍’의 시대가 끝나고, 경쟁업체로 제작진들이 이동하면서, 인력에 의한 기술력이 평준화되었다. 주요 업체로는 ‘미디아트’, ‘CGI’, ‘서울 비젼스’ 등이 대표적이었고, ‘VIS’, ‘형보’, ‘서울 디지털’ 등은 후발 업체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나름대로 제작 업체로 참여하였다. 1987년 IMF 직전에 양대 포스트프로덕션의 CG 역사를 만들어 왔던 ‘비손텍’과 ‘LIM’이 무리한 사업 확대와 고가의 장비 투입으로 부도를 내게 된다. 이어서 젊은 제작자들 중심의 업체 (‘에이팩스’, ‘이미지하우스’, ‘인디팬더스’, ‘서브마린’ 등) 들이 생겨나면서 제작의 효율적인 분업화가 이루어졌다. 편집과 CG가 구분되었고, CG는 또다시 2D 합성과 3D 제작으로 분류되었으며, 각 팀들은 체계적으로 인력 배분 및 구성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제작자들은 각자의 영역을 확고히 만들었고, 포스트프로덕션은 각자의 방향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업체는 제작자에 따라 편집을 잘하는 회사와 합성을 잘하는 회사, 3D 제작을 잘하는 회사 등으로 구별되었다.


Fig. 5. 
Ssangyong Motor Musso Sport, 1993[25]

1989년 ‘채널 4’를 기점으로 하여 ‘비손텍’, ‘시네픽스’, ‘애니텔’ 등에 의해 국내 기술력을 활용하여 ‘버드와이저’, ‘해태봉봉’ 등의 CG를 이용한 광고 영상이 등장하게 된다[5].

1990년대 들어오면서 광고시장에서 CG를 이용한 영상 제작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되었으나 촬영된 필름의 디지털화 과정인 NTC(Negative Telecine)가 매우 고가이어서 제한적으로 활용되었다. 방송사를 시작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영국 퀀텔(Quantel) 사의 헨리, 에딧박스 등과 같은 장비를 이용한 2D 이팩트(effect)와 컬러 합성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1993년 ‘선우’와 ‘코래드’에서 제작한 쌍용의 무쏘 1차 TV 광고 영상은 3D로 제작된 코뿔소가 자동차로 몰핑(morphing)기법을 활용하여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하였다.

이와 함께 국내 TV 광고는 영상미와 CG 효과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해외 광고의 모방을 통해 기술적 측면과 영상의 표현기법을 발전시켜나갔다. 이를 단초로 끊임없이 개발되는 컴퓨터 기술과 함께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하였고, 날마다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들을 힘입어 1993년에는 국내 방송광고비가 1조억 원을 돌파하였고, 동일한 해에 대전 EXPO가 개발도상국 최초로 유치되었다. 그 기간 내에 시행했던 ‘컴퓨터 영상 축제’는 CG를 활용한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12]. 당시에 광고를 제작하는 데 한 타임 (4시간 혹은 8시간 기준) 500만 원인 2D 제작비, 초당 몇백만 원으로 측정된 3D 제작비도 적은 돈이 아니었으나, 광고 제작사들은 서로서로 ‘보다 화려한 이미지’를 위한 CG에 큰 비용을 투자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기였다. CG 제작 물량이 늘어나게 되자, 기존 포스트프로덕션만으로는 소화할 수가 없어서 소규모의 업체들이 생겨났고, 다양한 업체들이 CG 제작에 참여하면서 국내는 CG 기술력을 형성해 갈 수 있었다[12].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함께 노순동[26]은 ‘비손텍’, ‘제로원픽처스’, ‘LIM’ 등은 모두 CF CG를 기반으로 영화 CG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당시 해외와 비교하면, 헐리우드 영화는 첨단기법을 개발하면서 공급해 왔지만, 국내는 광고에서 기술을 쌓아 영화에 진출하는 형식이었다. 이에 대해 ‘제로원픽처스’의 신대표 역시 “영화만 놓고 볼 때는 CG 역사가 짧지만, CF에서 노하우를 쌓아 왔기 때문에 국내 CG는 앞으로는 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다.”라고 하여 당시 상황을 증명하였다. 이와 함께 이동진[27]은 1998년 기준 현재로선 영화 CG 시장 규모가 미미해 CF CG 작업을 병행하며 수지를 맞춘다고 표현하며, 동일한 입장을 기술했다. 또한, MBC CG디자이너인 이인재[28]는 ‘휴먼테크’와 ‘테크노피아’ 등 광고는 거의 해외에서 제작되지만, 뉴스데스크, 일기예보, 선거 개표방송, 프로야구 등은 국내 그래픽기술로도 충분히 제작한다며, 그 당시의 방송 CG 기술의 국산화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1995년 이후에 TV에서 제시된 CF는, 초반기의 CG 사용을 자랑처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작업의 퀄리티를 요구하는 리얼리티를 강조하게 된다. 그 영향은 헐리우드 영화인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1993)>의 공룡들과 실사의 합성 장면이나,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에서 자연스러운 깃털이 3D 그래픽과 2D의 합성 작업으로 실사처럼 표현되었으며, 또 주인공이 케네디 대통령과의 악수하는 장면 또한 합성인 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인 기법으로 합성이 이루어진 영상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이인희와 최한진[29]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폭증하는 광고 분야의 인기와 함께 다양한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방송 매체와 채널의 종류가 늘어나면서 영상 제작 분야에 대한 중요성과 관심이 증대하였고,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방송인력에 대한 수요가 최근 급증하였고, 이에 따라 전문 방송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29]-[31] 고 표현하였다. MBC 영상기술부의 정원식[32]은 방송에서의 CG 효과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은 SF 드라마와 CF라며, 한시라도 시청자의 눈을 붙잡아야 하는 CF의 경우는 그야말로 CG와 특수영상효과의 첫 시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표현하였다. 이에 대해 장선일은 '제한적 창조' 혹은 '구속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장선일 인터뷰, 2021.06.04.). 포스트프로덕션의 박영민 씨는 CF CG 작업은 촬영이 끝난 뒤 시작되는 후반작업의 특성상 기획부터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는 한계[8]가 있다고 표현하였다.

한국 CF CG는 1990년 전후로 국내 포스트프로덕션에서 CG를 활용하여 CF를 제작하게 됨에 따라 2000년대부터는 해외의 CF CG 수준을 뛰어넘게 되었다.


Ⅲ. 결 론

이 연구는 급속히 발전한 한국 CF CG디자인의 변화를 기술과 제작, 사회문화적 환경의 맥락 안에서 연관성을 살펴보고, 원인과 상황의 고찰을 통해 사례 분석에 초점을 두었다.

연구하면서 CF CG디자인을 주제로 시대적인 변화를 살피면서, 시기별 CG에 관계한 여러 요소를 이해하는 공시적인 연구를 축적하는 체계로 진행하였다.

국내에서 불모지였던 초창기 CG를 발전시킨 제작자들은, 개척자이자 장인으로 존경의 뜻을 표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국내의 CG, 나아가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직접 인터뷰 혹은 당시 뉴스 보도 내용과 신문 기사를 통해 초기 CF CG 제작자들은, 저마다 입장은 달랐지만, 자신이 처한 기술적 한계의 상황에서 원하는 영상 표현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을 응용하고, 하나하나 손으로 표현해가며, 꾸준히 도전하고 있었다.

국내 CF는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새로운 영상 표현'이 필요했고, 그 표현으로 CG를 활용하게 되었다. CG 기술은 큰 비용을 요구하였고, 기술력과 인력이 뒷받침되어야 했기에, 국내에서는 영화보다 CF에서 먼저 CG가 발전하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해외의 CG 기술로 영상을 제작하였다. 시청자에게 그 반응이 좋아지자, 국내에서는 다수의 포스트프로덕션이 설립되었고, 이에 따라 편집, 2D, 3D로 각각 전문 분야가 생겨났다. 초반의 국내 포스트프로덕션은 해외의 영상미를 모방하는 데 그쳤으나, 인력 충원과 다양한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우리의 것을 제작하였고, 현재는 국내 CG 기술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초창기의 CG 이미지를 지금 평가하기에는 퀄리티 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처음부터 완성된 작업은 아니었으나 시행착오를 거치고, 실패하면서 국내 CG가 나아갈 방향과 방법에 대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을 단초로 후에 역사 기술기에 있어 보완점으로 남겨둔다.

한국 CG디자인과 기술의 외적 성장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도입 과정에 관한 과거의 이해로부터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서 한국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반영하고 있는 한국 CG 역사에 관해 연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한국 CG 도입 시기의 역사에 관련된 사회문화적 관점을 통해 연구방법론을 연구‧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CG의 디자인적 관점과 기술의 발전 관점으로 역사를 연구‧교육하는데 활용할 수 있는 국내 CG 역사 연표를 기록하여 국내 CG의 형성과 활성화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한국 CF CG 도입 과정을 밝히기 위해 초기 CG가 사용된 사례를 정리하고 분석함으로써 향후 한국 CF CG 역사를 연구하는데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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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나소미(So-Mi Nah)

2000년 : 홍익대학교 (미술학사)

2007년 : 홍익대학교 (미술학석사)

2013년 : 홍익대학교 (영상학박사 수료)

1999년~2003년: ㈜ 서울비젼

2003년~2004년: ㈜ 화이어웍스

2004년~2008년: ㈜ 믹스 필름

2007년~2010년: ㈜ SBS 에이앤티

2016년~현 재: 가톨릭관동대학교 CG디자인학과 조교수

※관심분야 : CG, VFX, Motion Graphics, 역사연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