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Digital Contents Society
[ Article ]
Journal of Digital Contents Society - Vol. 26, No. 9, pp.2477-2485
ISSN: 1598-2009 (Print) 2287-738X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Sep 2025
Received 11 Aug 2025 Revised 02 Sep 2025 Accepted 17 Sep 2025
DOI: https://doi.org/10.9728/dcs.2025.26.9.2477

ANT 관점에서 본 생성형 AI와 예술 창작 주체성의 재구성

임우주1 ; 신지호2, *
1건국대학교 영상학과 석사과정
2건국대학교 매체연기학과 교수
Generative AI and the Reconstruction of Artistic Subjectivity: Evidence from the ANT Perspective
Woo-Ju Lim1 ; Ji-Ho Shin2, *
1Master’s Course, Department of Film and Digital Media, Konkuk University, Seoul 05029, Korea
2Professor, Department of Media Acting, Konkuk University, Seoul 05029, Korea

Correspondence to: *Ji-Ho Shin Tel: +82-2-450-6091 E-mail: cool@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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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예술 창작 주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창작 과정에서 비인간 행위자의 실질적 개입 가능성을 부각하며, 인간 중심의 전통적 창작 주체 개념에 대한 비판적 재고를 요구한다. 이에 본 논문은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을 이론적 틀로 삼아,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창작 네트워크의 구조를 고찰한다. 나아가 현대 예술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창작 주체성이 어떻게 분산되고 재구성되는지를 살펴보고, AI를 단순한 도구로 간주하는 기존 관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이러한 논의는 창의성, 저자성, 주체성 개념이 디지털기술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조망하며, 예술 창작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틀을 제안하는 데 목적이 있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the impact of the advacements in digital technology and artificial intelligence (AI) on the subjectivity of artistic creation. The emergence of generative AI has highlighted the possibility of substantial non-human actor involvement in the creative process, demanding a critical re-examination of the traditional human-centered concept of creative agency. Therefore, this study adopts Bruno Latour’s Actor-Network Theory (ANT) as a theoretical framework to examine the structure of creative networks in which human and non-human actors participate equally. Furthermore, by analyzing contemporary art cases, it examines how creative agency is distributed and reconfigured, thus critically reflecting on the existing perspective that views AI as a mere tool. This analysis aims to explore how concepts of creativity, authorship, and agency transform through interactions with digital technology and proposes a new conceptual framework for artistic creation.

Keywords:

Generative AI, Actor-Network Theory (ANT), Creative Agency, Non-Human Actor, Distributed Creativity

키워드:

생성형 AI, 예술 창작 주체성,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비인간 행위자, 기술-예술 융합

Ⅰ. 서 론

1-1 연구 배경 및 목적

21세기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은 예술 창작 방식과 구조에 근본적인 전환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등장은 창작 주체 개념의 재구성을 요청하며,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간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적 창작 구조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생성형 AI 기반 예술 창작은 인간 중심의 표현 행위에서, 데이터·프롬프트·알고리즘 기반의 협업적 생성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프롬프트 설계, 알고리즘 작동, 데이터 구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얽힌 협력적 실천의 산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1].

이러한 변화는 예술가를 결과물의 표현자에서 창작 조건의 구성자이자 윤리적 조정자로 확장한다. 현재의 기술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창작 조건을 구성하는 실질적 행위자로 작동하며, 이에 따라 창작의 의미, 책임, 그리고 ‘저자성(authorship)’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제기된다. 바르트(Roland Barthes)가 제시한 저자의 죽음(La mort de l’auteur) 개념은 저자성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네트워크 안에서 구성되는 기능적 위치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2]. 푸코(Michel Foucault)의 ‘저자가 무엇인가’ 논의 역시 이러한 관점을 보완하며, 창작 주체를 고정된 자아가 아닌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로 바라보게 한다. 본 논문에서 창작 주체성은 창작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개입하며 결과물의 의미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 및 비인간 행위자의 관계적 구성으로 정의한다. 특히 창의성은 기존 심리학적 정의(예: 새로움과 의미 적합성 기준)에서 출발하되, 기술적 행위자의 기여를 고려한 확장적 시각을 채택한다. 창작 주체성은 더 이상 개인의 내면적 의도에만 근거하지 않으며, 알고리즘, 데이터셋, 플랫폼 등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과의 조율 속에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생성형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예술 창작 주체성 형성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비인간 행위자로 규정하고, 이러한 관계망을 ANT 이론을 통해 분석한다. 또한 본 연구에서 예술가의 역할이 결과물의 생산을 넘어 창작 조건의 설계, 윤리적 판단, 사회적 맥락 고려를 포함하는 실천 주체로 확장되고 있음을 밝히는 데 있다. 나아가 본 연구는 예술 창작을 고립된 자아의 표현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 기술, 환경 요소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동적으로 형성되는 관계적 실천으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특히 ANT의 ‘번역’, ‘불변 기술’, ‘분석적 대칭성’ 등의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비인간 협업 구조 속에서 창작 주체성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고찰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Refik Anadol, Pierre Huyghe, Portrait of Edmond de Belamy 사례 분석을 통해, 기술이 창작의 도구를 넘어 주체성 형성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을 실천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1-2 연구 방법

본 연구는 생성형 AI 기반 예술 창작에서 창작 주체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형성·조정되는지를 규명하고자,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의 상호작용 구조를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특히 프롬프트 설계, 데이터 구성 등 창작 과정의 구체적 단계에서 예술가와 기술 시스템이 수행하는 역할 간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주체성의 분산적 형성과 조정 메커니즘을 고찰하였다. 전통적인 창작 이론에서는 주체성을 예술가의 내면에서 비롯된 자율적 영감과 표현을 중심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생성형 AI와 같은 비인간 요소가 창작 과정에 깊이 개입하면서, 이러한 시각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ANT는 창작이 특정 주체의 내면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 데이터셋, 하드웨어, 인터페이스, 그리고 인간 사용자 등 다양한 행위자 간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드러낸다. 이로써 예술 창작의 주체성은 누가 창작했는가 질문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어떤 관계망이 창작을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한 구조적 분석으로 전환되고 있다.

본 연구는 먼저 생성형 AI를 독립적 창작 주체로 간주할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창의성 개념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을 분석하였다. 창의성을 인간의 감정이나 직관에만 국한하는 전통적인 관점은 기계의 창의적 사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반면, 창의성을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인지적 능력으로 정의하는 접근은 일정 조건에서 AI 역시 창의적 행위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3]. 특히 그 산출물이 충분한 참신성과 의미를 담보할 경우, AI의 결과물도 창작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AI를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는 이론적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더 강화되어, 예술가와 기술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의성이 공동으로 구성되며, 이에 따라 창작 주체성 역시 유동적으로 재편된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이론적 기반 위에서 생성형 AI가 사회적·미학적 맥락 속에서 예술로 수용되는 방식을 분석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Refik Anadol의 Machine Hallucinations 시리즈는 AI가 학습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성한 시각적 결과물이 관객의 감각과 해석을 자극하는 과정을 통해, 기술이 단순한 보조 수단을 넘어 창작의 실질적 행위자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사례에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의 핵심 개념을 적용하여, 생성형 AI가 창작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해석하고자 하였다. ANT는 인간과 비인간을 대칭적으로 분석하는 시각을 바탕으로, 창작을 다양한 요소들이 얽힌 네트워크의 산물로 파악한다. 딥러닝 알고리즘, 훈련 데이터, 플랫폼, 전시 공간 등은 모두 창작 주체성 형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요소로 간주하며, 이에 따라 창작은 인간 중심 모델에서 기술과의 ‘공동 구성(co-configuration)’ 구조로 이행되고 있다[4]. 이론적 논의의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Refik Anadol, Pierre Huyghe, Obvious의 작업을 중심으로 사례 분석을 수행하였다. Huyghe의 작업은 인간과 비인간, 유기체와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복합 생태계를 구성하며, 창작 주체성의 개념을 더 확장한다. 특히 전시 UUmwelt에서는 AI가 생성한 이미지 조합을 뇌파 스캔과 연결하여, 관객의 생체 반응과 알고리즘 출력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이 작업은 인간의 의식, 기술 시스템, 전시 환경 등 다양한 요소가 협력하여 창작 주체를 구성하는 과정을 탐구하며, ANT의 이론적 틀을 예술 실천의 맥락으로 확장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예술 그룹 Obvious의 작업은 GAN을 기반으로 학습된 초상화 알고리즘과 크리스티 경매라는 제도적 구조 간의 연결을 통해, AI 산출물이 예술로 승인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ANT 관점에서 이는 알고리즘, 서명, 법적 코드, 유통 시스템 등이 ‘불변 기술’로 작동하며 창작의 사회적 인정을 구축하는 메커니즘을 드러낸다[5]. 해당 사례는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의 협업 구조가 창작 주체성의 형성 과정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예로 기능하며, 본 연구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근거로 작용한다.

본 연구는 생성형 AI를 창작 주체성 구성에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행위자로 간주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얽힌 복합적 협업 구조 속에서 창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ANT 이론을 통해 다층적으로 고찰하였다. 그러나 아직 이 이론의 적용이 창작의 주체성 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론상으로는 행위자 간 대칭적 분석이 가능하나, 현실에서는 기술 기업, 플랫폼, 알고리즘 설계자 등 특정 행위자들이 네트워크를 기획하고 규율하는 구조적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논의는 기계나 기술을 주변적 존재로 치부하지 않고, 창작의 조건을 구성하는 실질적 행위자로 간주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ANT의 시각을 바탕으로 생성형 AI 기반 예술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AI가 창작 주체성의 형성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며, 인간-비인간 행위자의 협력 구조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생산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Ⅱ. 생성형 AI와 창의성의 재구성

2-1 전통적 창작 주체 개념의 한계

21세기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은 예술 창작에서 인간 중심의 전통적 주체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술 창작은 오랫동안 감각, 감성, 의도, 창의성 등 인간 고유의 내적 역량에 기반한 활동으로 간주해 왔으며, 주체성은 자율적 개인의 고정된 속성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현재의 AI는 방대한 데이터 학습과 자율적 생성 과정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생성함으로써,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창작 주체성의 네트워크적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생성형 AI가 확률 기반의 비결정론적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동일한 프롬프트에도 서로 다른 결과를 산출하는 구조적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성형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능동적 행위자로 기능하며, 창작은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일방적 표현이 아닌, 인간-AI 간 상호작용과 협업을 통해 조정되는 복합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특히 GAN이나 트랜스포머 기반의 모델은 출력에 대한 인간의 직접적인 통제를 어렵게 하며, 결과물은 인간과 AI 간 협의와 해석이 필요한 협업적 산물로 전환된다. 이러한 구조는 창작 주체성을 단일한 인간 주체의 의도에서 벗어나, 기술적 행위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동적으로 구성되는 네트워크적 실천으로 확장한다[6].

또한 AI가 생성하는 창작물은 단순한 반복이나 기존 데이터의 기계적 재조합을 넘어, 학습된 양식의 규칙을 변형하고 새로운 표현 양식을 탐색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러한 특성은 창의성의 핵심 요소로 논의되는 새로움(newness)과 의미의 적합성(relevance)을 일정 수준 충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생성형 AI는 기존 규범에 기반한 구조적 변주뿐 아니라,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방식의 출력을 생성함으로써, 창작 행위에 있어 자율성과 독창성을 일정 부분 구현하는 것으로 평가된다[7].

이러한 흐름은 창의성 개념의 역사 속에서도 되풀이된 바 있다. 르네상스 시기 창의성은 신의 영감을 매개한 인간의 모방 능력에 머물렀고, 낭만주의 시대에는 개별 예술가의 내면적 감성과 독창성을 표현하는 천재 예술가 담론이 형성되었다. 반면 20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러, 창의성은 단일한 개인의 고유한 능력이라기보다 문제 해결, 조합, 변형, 실험, 의미 생성 등 구성적 활동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창작 주체의 개념은 근대 아카데미즘과의 긴장 속에서 제도적 규범과 예술가의 자율성 사이에서 이중적으로 정립되었다.

20세기 초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예술 창작을 단순한 제작에서 벗어나 개념과 맥락의 구성 행위로 전환했다. 이로써 예술가는 물리적 제작에서 벗어나 개념과 맥락의 구성 행위로 전환했다. 이로써 예술가는 물리적 제작자에서 개념 설계자이자 기획자로 변화했으며, 창작 주체 역시 단일한 자아가 아닌 다양한 행위자들이 기획자로 변화했으며, 창작 주체 역시 단일한 자아가 아닌 다양한 행위자들이 얽힌 관계 속에서 재정의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 디지털 기술의 개입과 함께 가속화되었다. 푸코가 주장한 권력-지식의 담론 속 주체성은 창작 주체를 제도와 담론 속에서 규정되는 존재로 이해하게 했으며, 동시에 비숍이 제시한 참여적 예술 수행성 논의는 예술을 관객의 참여와 해석을 통한 관계적 실천으로 확장했다[8]. 이로써 창작은 고정된 의미 전달이 아닌,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되는 유동적·수행적 실천으로 전환되었다[9]. 이러한 맥락 속에서, 오늘날의 AI는 방대한 데이터 학습과 자율적 생성 과정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산출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창작 주체성의 네트워크적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생성형 AI가 확률 기반의 비결정론적 알고리즘으로 작동하고, 동일한 프롬프트에도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구조적 특성에 기인한다. 특히 생성형 AI는 도구-창작자라는 이분법을 넘어, 기술 시스템과 인간 주체 간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복합적 창작 네트워크의 일부로 기능한다.

2-2 AI의 창의성: 조합적·탐색적·변형적 구조

인공지능의 발전은 창의성을 인간의 직관적 통찰이 아닌, 절차적이며 계산할 수 있는 인지 구조로 이해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에 따라 창의성은 감정이나 천재성보다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구조적 조건과 연산적 과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마가렛 보든은 창의성을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면서, 조합적(combinational), 탐색적(exploratory), 변형적(transformational) 창의성의 세 유형으로 구분한다[10]. 이 중 생성형 AI는 주로 조합적·탐색적 창의성에 해당한다. 조합적 창의성은 기존 개념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능력이며, 탐색적 창의성은 기존 규칙 내에서 가능한 조합을 탐색하는 능력이다. AI는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조합을 형성하거나, 훈련된 모델의 규칙 안에서 예상치 못한 출력물을 생성함으로써 이 두 영역에서 창의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향후 AI가 규칙 자체를 수정하거나 전환하는 변형적 창의성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제시한다[11]. 이와 같이 확장된 창의성 개념은 기술 행위자, 특히 생성형 AI가 일정 수준에서 창의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한다.

생성형 AI는 기존 데이터의 단순한 반복이나 재현을 넘어, 학습된 규칙을 바탕으로 새로운 양식의 변주와 탐색을 수행하며, 이는 창의성의 핵심 요소인 새로움과 의미의 적합성을 일정 부분 충족시킬 수 있다[12]. 즉, AI는 비록 감정이나 자기 의도를 지니지 않더라도, 구조적 조합 능력, 예측 불가능성, 의미 생성 가능성이라는 창의성의 핵심 구성요소를 구현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AI는 단지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계산 장치를 넘어, 데이터셋의 구성, 알고리즘적 처리 방식, 출력 양식의 구조 등 창작 과정의 전반적 조건을 함께 설계하고 조율하는 ‘중재자(mediator)’로 기능한다. 예술가는 문제를 설정하고, AI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반응하며, 이후 양자는 결과를 조율하고 보완한다. 완성된 창작물은 전시와 유통을 통해 사회적 해석의 장에 진입하며, 이는 일련의 창작 주체성이 고립된 자아의 산물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 간 협상과 조정 속에서 형성됨을 통해 보여준다[13].

2-3 주체성의 관계적 전환과 네트워크화

오늘날의 예술 창작은 인간-AI의 상호작용과 기술 매개의 협업 구조 속에서 ‘네트워크 기반의 메타-주체(meta-agent)’로 재편되고 있다. 이 정의는 창의성을 고립된 개인의 영감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속에서 새로운 조합과 의미를 산출하는 인지적·구성적 능력으로 이해하며,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경우 AI도 창의적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14]. 요컨대 창의성은 고립된 개인의 내면에서 비롯된 고유한 영감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속에서 새로운 조합과 의미를 생성해 내는 인지적‧구성적 능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의는 인간뿐 아니라 생성형 인공지능(AI) 역시 일정한 조건에서 창의적 주체로 간주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생성형 AI는 도구-창작자 이분법을 넘어서, 기술 시스템과 인간 주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복합적 창작 네트워크의 일부로 작동한다. 창작 주체성은 인간 내부의 고정된 자율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비인간 요소와의 협업과 번역, 조정의 관계망 속에서 다중 행위자의 실천적 조율을 거쳐 구성된다. 이로써 생성형 AI는 인간 및 비인간 요소들이 얽힌 창작 네트워크 하나의 행위자로 자리 잡으며, 본 연구는 ANT 이론과 사례 분석을 통해, 이러한 네트워크 기반 창작 주체성의 형성 과정을 다층적으로 고찰한다.


Ⅲ.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과 창작 주체성

3-1 ANT 이론의 핵심 개념(번역, 불변 기술, 대칭성)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은 인간만을 능동적 주체로 보는 전통 사회 이론의 인간 중심주의 한계를 비판하고, 인간과 비인간(기계, 기술, 제도, 데이터 등)을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분석하는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 ANT에 따르면 주체성은 고정된 자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사회적 요소들이 얽혀 작동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관계적 결과이다. 즉, 주체는 미리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네트워크 내 행위자 간 상호작용의 역학 속에서 구성된다.

ANT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번역(translation)’은 서로 다른 행위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와 기능을 조율하여 하나의 공동 작동 체계를 구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15]. 예술가, 알고리즘, 데이터셋, 인터페이스, 전시 시스템 등은 각기 고유한 기능과 속성을 지닌 독립적 행위자들이지만, 창작이라는 목표를 위해 상호작용하고 조율될 때, ANT의 의미에서 ‘번역’이 발생한다. 이는 단순히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목적과 역할을 재구성하며 하나의 연동된 체계를 만드는 실천이다. 예술가는 창작 개념과 의도를 프롬프트로 제시하고, 알고리즘은 이를 해석해 데이터셋과 연계된 시각적 결과물을 생성한다. 인터페이스는 결과를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시각화하고, 전시 시스템은 이를 사회적 감상 맥락에 배치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언어는 단순한 텍스트나 말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감각과 의미를 표현하는 창작적 수단을 의미한다. 이러한 언어는 기술, 데이터 등 비인간 요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동적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창작 주체성은 고정된 자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 간 영향과 번역의 결과로 나타나는 공동 구성물이다. 이때 창작자는 결과물을 단독 생산하는 존재가 아니라,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조율하는 ‘중재자(mediator)’로 자리매김한다[16]. 다만 미셸 칼롱의 ‘번역’ 개념에 따르면, 네트워크는 항상 대등하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인간과 기술이 수평적으로 협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행위자—예컨대 영향력 있는 작가, 기관, 플랫폼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조가 설계될 수 있다. 이는 창작의 평등성과 접근 가능성을 제한하는 현실적 요인이다.

3-2 창작 네트워크의 이론적 적용

ANT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인 ‘불변 기술(immutable mobiles)’은 라투르가 과학 지식의 안정성과 전파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다. 이는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도 정보가 손상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이동하며 동일한 효과를 재현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장치를 의미한다[17]. 예술 창작에서는 알고리즘, 훈련 데이터, 프롬프트, 인터페이스, 전시 환경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프롬프트는 인간의 의도를 기술 언어로 번역하는 중재 기호로 기능하며, 예술가는 이를 통해 기술-사회적 번역자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매개체는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창작 의미를 안정화하고, 결과물의 반복 가능성을 확보하며, 이질적인 행위자 간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형성한다. 생성형 AI 예술에서 불변 기술은 핵심적 역할을 한다. 특정 알고리즘이 특정한 예술적 스타일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재현하도록 설계되었다면, 해당 알고리즘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창작 규칙과 작동 기준을 구성하는 의미 형성자로 기능하게 된다. 즉, AI는 단순한 실행 장치를 넘어 창작 구조를 형성하고 의미를 생성하는 실질적 행위자로 작동하며, 이는 창작 주체성을 인간 내부의 자율성으로 환원하는 기존 관점을 넘어서는 시각을 요구한다. 이로써 창작 주체성은 인간-기술 상호작용 속에서 유동적이며 수행적인 개념으로 재정의된다[18].

라투르가 제시한 ‘분석적 대칭성(analytical symmetry)’은 인간과 비인간을 동일한 분석 단위로 다루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창작 주체성은 인간의 감정이나 영감에만 한정하지 않고, 알고리즘을 설계자, 데이터 구축 시스템, AI 기술,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제도 및 플랫폼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구조로 확장된다. 이는 보든이 말한 탐색적 창의성 개념과도 연결된다[19]. 기존의 자율적 창작자 중심의 창의성을 관계적이고 구성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따라서 창작의 핵심 판단 기준은 단순히 ‘인간이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결과물이 얼마나 새롭고 의미 있게 구성되었는가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창작 주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기술적‧사회적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하는 일시적이고 수행적인 효과로 읽힌다. 그러나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창작 구조가 새롭고 의미 있게 구성되었는지이지, 그것이 인간 단독의 산물인지 아닌지는 본질적인 판단 기준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창작 주체성은 단일하고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기술적‧사회적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하며 구성해 내는 일시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의 창작 환경은 이러한 이상적인 대칭성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한다. 창작 주체성이 형식적으로는 분산된 듯 보일지라도 예술가의 프롬프트와 알고리즘조차 플랫폼이 설정한 조건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에 창작의 자율성은 종종 제한된 맥락에서만 실현된다[20]. 이처럼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창작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사회적 행위자로 간주함으로써, 예술 창작의 구조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21]. 이 이론은 창작 주체성을 고정된 자아의 산물이 아닌, 기술-인간-사회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얽힌 네트워크 안에서 수행적으로 형성되는 결과로 해석하며, 기존의 창작자 중심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과 재고를 요청한다[22].


Ⅳ. 사례 분석

4-1 Refik Anadol의 <Machine Hallucinations>

예술 창작에서 인간 주체의 독점적 지위가 해체되고,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이 창작 조건 형성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과정은 Refik Anadol과 Pierre Huyghe의 작업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는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 두 사례는 모두 ANT의 ‘대칭성의 원칙’과 ‘번역의 과정’을 통해 해석할 수 있지만, 그 구현 방식은 상이하다. 라투르는 자연과 사회, 인간과 사물을 분리해 온 근대성의 허구를 비판하며, 인간-비인간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행위자-네트워크 개념을 제시한다[23]. 여기에서 한 명은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기술적 체계의 설계자로, 다른 한 명은 예측 불가능한 존재론적 흐름의 공존자로 기능하며, 인간-비인간의 협업 양식을 다른 감각적 장치로 구현한다[24].

Refik Anadol은 대규모 데이터셋과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기계적 상상력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특히 《Machine Hallucinations》 시리즈에서는 GAN 기반 AI 모델에 수십만 장의 시각 데이터를 학습시켜, 인간의 인지 범위를 넘는 감각적 이미지를 생성한다[25]. 이러한 생성 과정을 통해 시각화는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인간과 기계의 감각 협업에 대한 미적 사유로 이어지게 된다. 작가는 단순한 입력자가 아니라 데이터 구성, 알고리즘 조건 설정, 몰입형 전시 환경 기획 등을 아우르는 조율자로 기능한다[26]. 이 과정에서 데이터는 단순한 입력값을 넘어 알고리즘의 학습 경로와 출력 양식을 규정하는 적극적 행위자로 기능하며, 전시 환경과 결합해 하나의 유기적 창작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Fig. 1.

Refik Anadol, <Machine Hallucinations:Mars>, 2021, Refik Anadol Studio

이러한 작업 방식은, 창작 주체가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다양한 기술적 요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에서 ANT 이론의 핵심 관점과도 맞닿아 있다[27]. 라투르는 주체를 실체가 아닌 네트워크 내 상호작용의 결과로 파악하며, 행위성을 고정된 속성이 아닌 효과로 규정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Anadol의 작업은 프롬프트, 알고리즘, 몰입형 전시 환경, 관객 감각 반응 등이 하나의 창작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몰입형 미디어와 다채널 사운드는 수용자의 감응을 적극 유도하며, 라투르가 말한 비인간 행위자의 추적(trace)을 관객이 역으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창작 체험을 확장한다[28]. 여기서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사회적 기억과 감정이 축적된 집단 감각의 층위로 작동하고, 알고리즘은 이를 해석하고 재조합하는 실질적 행위자로 기능한다[29].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대한 일방적 수용이라는 한계를 또한 드러낸다. 감각과 수용의 조건이 알고리즘과 데이터 구조에 의해 선결될 때, 창작은 인간 주체의 내면적 직관이나 윤리적 판단에만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기계 역시 네트워크 맥락 속에서 수행적 행위성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이는 상호작용의 효과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한다[30]. 이러한 관점에서 Anadol의 작업은 데이터, 알고리즘, 전시 환경을 단순한 매개물이 아니라 창작 조건을 안정화하는 행위자로 드러내며, 창작 주체성은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번역 속에서 분산적으로 형성된다.

4-2 Pierre Huyghe의 <UUmwelt>

Pierre Huyghe의 작업은 기술과 감각, 존재와 시간, 인간과 환경이 상호 얽히며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생성적 생태계를 구성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UUmwelt》(2018)는 관람자의 뇌파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여 딥러닝 알고리즘에 입력하고, 그 결과로 생성된 이미지를 전시장 벽면에 투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는 기술·환경·감각·존재가 동시에 얽히는 과정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단순한 기술 매개가 아닌 존재론적 실험의 성격을 띠고 있다[31]. 특히 이 작업은 인간 신체 내부의 생리적 데이터를 작품의 구성요소로 직접 활용함으로써, 감각 주체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전환한다[32]. Huyghe는 작가의 통제력을 극도로 줄이고, 다양한 요인—기후, 조도, 뇌파 반응 등—들이 상호작용을 하며 결과를 구성하도록 설계한다. 이러한 접근은 고전적인 창작 주체 개념을 해체하며, 기술과 생명, 환경이 얽힌 하나의 전시 생태계를 구성한다[33].

이러한 작업은 인간의 뇌파, AI 알고리즘, 전시 공간이라는 다중 요소의 실시간 상호작용을 통해 창작 주체를 시공간적으로 구성한다. 이는 라투르의 존재론적 다원성과도 깊은 연관을 맺는다. 창작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인지‧기술‧환경 요소의 조율을 통해 발생하는 관계적 구성물이다[34].

뇌파 측정 장치, 딥러닝 알고리즘, 투사된 이미지, 그리고 관객의 감정 반응은 모두 서로를 번역하고 재조율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Anadol이 기술의 질서를 구축하고 감각을 구성하는 설계자라면, Huyghe는 예측 불가능성과 생성적 흐름에 내맡기는 존재론적 공동 구성자로 기능한다. Anadol의 세계가 ‘감각-기술-데이터’의 유기적 정렬이라면, Huyghe의 세계는 ‘유기체-기계-환경’의 불 완결한 공존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표현 방식의 차이를 넘어, 인간-비인간 관계에 대한 미학적 감각과 정치적 태도의 차이로 이어진다.

이러한 차이는 ANT의 핵심 원칙 분석적 대칭성이나 번역 구조 등을 미학적으로 실험하거나,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접근으로 해석될 수 있다. Anadol은 기술 시스템의 감각적 재구성에 집중하며, AI를 인간 경험의 확장 장치로 활용한다. 반면 Huyghe는 인간-비인간-환경 간의 복합 생태계를 통해, 창작 주체가 시간‧공간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을 실험한다.

Fig. 2.

Pierre Huyghe, <UUmwelt>, 2021, installation view from《Liminal》, courtesy of Leeum Museum of Art, photo by LESS

두 작업은 모두 기술의 주체화 가능성을 탐색하지만, 그 방식과 목표는 상이하다. 이러한 점에서 두 작업은 생성형 AI 시대의 창작 주체성이 단일한 저자의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간 타협이 이뤄진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조건적 효과임을 보여준다. Anadol의 접근이 구조화된 조율을 강조한다면, Huyghe의 방식은 열린 생태적 공존을 수용하며, 이는 모두 ANT적 해석이 예술에 적용되는 개념적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이러한 상이하지만 상호 보완적인 위치는, 동시대 예술이 기술 결정론과 관계적 네트워크의 주체성 사이를 어떻게 항해하는지를 이해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4-3 Obvious의 <Edmond de Belamy>와 기술-시장 네트워크

프랑스 미디어아트 그룹 Obvious가 제작한 <Edmond de Belamy>는 생성형 적대 신경망(GAN)을 활용해 생성된 초상화로,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43만 2천 달러에 낙찰되며 인공지능 산출물이 예술 시장에서 사회적 인정을 받은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았다[35]. 이 작품은 GAN 알고리즘, 훈련 데이터셋, 예술가 집단의 큐레이션, 경매 플랫폼이라는 서로 다른 행위자들이 하나의 창작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ANT의 ‘번역(translation)’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알고리즘은 훈련된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한다[36]. 예술가 집단은 그중 특정 출력을 선별하여 서명과 문맥을 부여함으로써 이를 예술 작품으로 규정한다[37]. 마지막으로 경매 플랫폼은 해당 결과물을 미술시장 안에서 유통 가능한 예술로 정당화하며, 기술–시장–사회 구조 간의 상호 조율을 수행한다.

이와 같이 이질적인 행위자들은 각자의 기능을 유지한 채, 창작물의 생산 및 유통을 위한 협업 구조를 형성하며 번역을 수행한다. 특히 GAN 알고리즘과 데이터는 특정한 양식을 반복 생성함으로써 안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이 과정에서 ‘불변 기술(immutable mobiles)’로 기능한다. 알고리즘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반복할 수 있는 형식과 작동 규칙을 생산함으로써 창작의 조건 자체를 구조화하는 기술적 행위자로 작동한다. 이는 과학에서 실험 수치나 도표가 반복 재현을 가능하게 하듯, 창작물의 유통과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다[38]. 또한 <Edmond de Belamy> 사례는 창작 주체성을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간의 ‘분석적 대칭성(analytical symmetry)’ 속에서 재해석할 가능성을 보여준다[39]. GAN의 학습 구조와 출력 메커니즘은 예술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으며, 작품에 서명된 Belamy라는 이름은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 작가 집단이 기호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이는 창작 주체가 단일한 인간 행위자에게 고정되지 않고, 기술과 제도, 사회적 맥락이 함께 구성하는 관계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예술의 ‘작가성(authorship)’을 탈중심화하며, 창작 과정에서 기술과 제도의 권력 구조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40]. 더 나아가 이 사례는 인공지능 창작이 단순히 새로운 기술적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제도와 시장, 제도적 승인 과정까지 포괄하는 복합적 네트워크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따라서 <Edmond de Belamy>는 생성형 AI가 창작 주체성의 구성 과정에서 단순 도구를 넘어 하나의 실질적 행위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동시에, ANT 이론적 개념들이 실제 창작 및 유통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창작의 권력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색할 수 있는 분석적 장을 제공한다.


Ⅴ. 결 론

5-1 ANT를 통한 창작 주체성의 재정의

본 연구는 생성형 AI 예술 사례를 중심으로,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을 통해 창작 주체성의 재구성 과정을 분석하였다. Refik Anadol과 Pierre Huyghe의 작업은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간의 복합적 상호작용이 창작을 구성하는 핵심 조건임을 보여준다. 창작은 더 이상 고정된 자율적 주체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 데이터셋, 전시 환경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얽힌 관계망 속에서 실천적으로 구성된다.

ANT는 이러한 창작 구조를 설명하는 유효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특히 ANT의 ‘번역(translation)’ 개념은 창작 주체성을 다양한 행위자 간 상호작용과 조율의 산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는 단순한 표현자가 아닌, 기술과 사회적 맥락을 조정하며 의미를 형성하는 ‘네트워크의 중재자(mediator)’, 혹은 ‘프롬프트 설계자’로서 재위치된다. 프롬프트는 인간의 창의적 의도를 기술 언어로 번역하는 핵심 기호이며, 이 번역 과정을 통해 AI와의 협업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관점은 예술가의 역할을 전통적인 저자(author)에서, 복합 네트워크의 설계자이자 윤리적 조율자로 확장한다.

5-2 기술-예술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전망

하지만 ANT 내부의 ‘분석적 대칭성’ 개념은 현실의 창작 환경에서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AI 시스템은 특정 기업과 기술 플랫폼이 설계한 알고리즘 구조에 의존하고, 훈련 데이터 역시 편향된 문화적, 사회적 조건을 반영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인간–기계 협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력 비대칭이 내재한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미셸 칼롱이 말한 ‘번역’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언제나 특정 행위자의 이해에 따라 조율된다. 따라서 프롬프트 기반 생성 시스템에서 AI의 ‘주체성’은 자율적이라기보다, 인간 의도의 산출물로 구성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독립적 창작처럼 수용되는 역설적인 상태를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서 앨런 튜링의 ‘지능의 효과’ 논의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41]. 인간이 AI의 내면 의도가 아닌, 결과물의 의미와 완결성을 기준으로 창작 여부를 판단한다면, 수행된 창작의 주체는 더 이상 인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이는 존 설의 ‘중국어 방’ 실험처럼 인공지능의 내부 이해 여부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창작이 관계적 구성이라는 점에서는 ANT의 수행성 개념과도 호응한다[42].

따라서 ANT는 단지 이론적 분석 도구를 넘어, 현실 속 창작 네트워크의 불균형과 권력의 작동 방식까지 비판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실천적 접근으로 확장될 수 있다. 특히 거버넌스, 알고리즘 투명성, 데이터 편향 제거 등의 논의와 연결될 때, ANT는 기술-예술 구조의 민주적 재조정을 위한 이론적 발판을 마련해 준다. 본 논문은 ‘성실함’을 창작자의 윤리적 태도로 제안한다. 이는 단순한 예술가의 진정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적‧사회적 행위자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책임 있게 조율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성실함은 어떻게, 누구와, 어떤 구조 속에서 창작하고 있는가 성찰하는 비판적 실천이며, 새로운 창작 윤리의 핵심 태도로 간주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인공지능을 창의성의 경계를 확장하는 실험적 파트너로 규정하며, 예술가는 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기술·사회·제도적 조건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윤리적 중재자이자 네트워크 설계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43]. ANT는 이러한 예술가를 재정의할 수 있게 하는 실천적 이론 틀로 기능하며, 향후 기술-예술 관계의 논의에 깊이 있는 비판적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나아가 성실함은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서 강조되는 관계적 책임성과 수행성의 차원에서 정당화 될 수 있다. 이는 행위자가 단순한 중재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산출하는 중재자로서 네트워크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태도를 뜻하며, 생성형 AI 시대 예술 창작의 핵심 윤리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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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임우주(Woo-Ju Lim)

2025년: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영상학과(석사)

※관심분야:생성형AI,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창작 주체성, 디지털 미디어아트, 인공지능 예술

신지호(Ji-Ho Shin)

2004년~현 재: 건국대학교 매체연기학과 교수

※관심분야:영화, 영상, 미디어연기, 영상콘텐츠, 디지털영상, 디지털콘텐츠

Fig. 1.

Fig. 1.
Refik Anadol, <Machine Hallucinations:Mars>, 2021, Refik Anadol Studio

Fig. 2.

Fig. 2.
Pierre Huyghe, <UUmwelt>, 2021, installation view from《Liminal》, courtesy of Leeum Museum of Art, photo by L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