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Digital Contents Society
[ Article ]
Journal of Digital Contents Society - Vol. 26, No. 7, pp.1785-1799
ISSN: 1598-2009 (Print) 2287-738X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Jul 2025
Received 27 Jun 2025 Revised 21 Jul 2025 Accepted 24 Jul 2025
DOI: https://doi.org/10.9728/dcs.2025.26.7.1785

실험 영화와 가상현실에서의 역사적 폐허 알레고리 연구

허대겸*
애버딘 대학교 박사, ㈜ 토포스 스튜디오 대표
A Study on the Historical Allegories of Ruins in Experimental Cinema and Virtual Reality
Daegyeom Heo*
Ph.D. (The University of Aberdeen), Director, Topos Studio Inc.

Correspondence to: *Daegyeom Heo E-mail: bumy550@vrtop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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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역사적 폐허를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닌 능동적인 기억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영화(특히 실험 영화)와 몰입형 가상현실(VR)을 중심으로 폐허의 역사적·알레고리적·현상학적 의미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고찰한다. 연구 결과, 실험 영화는 알레고리적 기법을 통해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역사적 진실을 전달하지만 2차원 화면과 고정된 시점으로 인해 관객 몰입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가상현실은 더욱 풍부한 몰입감과 상호작용을 통해 관객이 유적에 내재된 복합적 역사 의미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도록 함으로써, 기존 영상 매체의 표현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VR의 현전감은 관객으로 하여금 폐허 공간의 시간적 층위와 알레고리적 흔적을 체화된 방식으로 느끼게 하며,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상으로 재현할 때 수반되는 윤리적 고려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시킨다. 결국 VR의 현상학적 깊이는 무빙 이미지 매체의 표현 영역을 크게 확장하여 폐허를 집단기억과 공감적 역사 성찰의 역동적 공간으로 전환시킨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몰입형 미디어를 통한 역사 재현에는 새로운 윤리적 도전이 수반됨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신중한 접근의 필요성을 논의하였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historical ruins as active sites of memory by analyzing their representation in moving-image media, particularly experimental cinema and immersive virtual reality (VR), through historical, allegorical, and phenomenological frameworks. Experimental films convey fragmented historical truths through allegory but remain limited by the two-dimensionality and fixed perspective of traditional films. In contrast, VR offers heightened immersion and interactivity, allowing audiences to interact more directly with the layered historical meanings embodied by ruins. The study argues that VR’s phenomenological depth significantly expands the expressive potential of moving-image media, transforming ruins into interactive spaces of collective memory and empathetic historical reflection. At the same time, the paper underscores the ethical imperative of reconstructing traumatic histories in VR with consideration to avoid desensitization and ensure meaningful engagement with the audience.

Keywords:

Allegory, Ruins, Experimental Film, Virtual Reality, Phenomenology

키워드:

알레고리, 폐허, 실험 영화, 가상현실, 현상학

Ⅰ. 서 론

본 논문은 폐허라는 공간을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역사적 기억과 몰입적 경험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개념화하고 탐구한다. 폐허는 더 이상 단순히 버려지고 생명력이 없는 장소가 아니라, 전쟁이나 폭력적 역사와 같은 사회적 기억을 담아내며 이를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새롭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현장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20세기 후반 냉전 종식 이후 역사와 공간의 관계를 성찰하는 다양한 시도가 나타났으며, 특히 디지털 콘텐츠 연구 분야에서는 폐허를 과거의 기억을 시각화하고 상호작용 가능한 디지털 공간으로 표현하려는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맥락에서 홀로코스트 이후 나타난 역사적 성찰 운동의 배경을 살펴보고, 몰입형 가상현실이 어떻게 역사적 기억을 전달하고 형성할 수 있는지 분석한다.

특히 본 연구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알레고리 개념을 통해 폐허가 디지털 콘텐츠 환경에서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새롭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탐구한다. 또한, 기존의 전통적이고 시적이거나 수사적인 미디어 표현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같은 몰입형 미디어가 폐허가 지닌 역사적 트라우마를 현상학적으로 더욱 깊이 전달할 수 있는 잠재력에 주목한다. 폐허는 오랫동안 실험적 영화 제작자들에게 역사적 장소를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시각화하는 주제였으며, 어니 게어, 다니엘 아이젠버그, 알랭 레네와 같은 감독들은 폐허 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흔적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영상 매체는 평면적이고 2차원적 특성으로 인해 폐허의 복합적인 본질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VR과 같은 디지털 몰입형 콘텐츠는 사용자를 폐허가 가진 역사적 현장에 공간적으로나 감각적으로 밀접하게 연결시킴으로써, 전통적 매체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역사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디지털 콘텐츠의 가능성과 함의를 탐구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영상 미디어를 통한 역사적 장소의 재현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주로 영화 중심으로 이루어진 데 반해, 몰입형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지닌 미학적 특성과 한계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선행연구에서는 폐허를 통한 역사 인식과 기억의 문제를 철학적·예술적으로 탐구해왔으나, VR을 활용한 역사 체험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에 본 논문은 실험 다큐멘터리 영화와 VR 다큐멘터리를 대표 사례로 선정하여 질적 사례 분석 방법을 통해 두 매체의 역사 전달 방식을 비교하였다. 구체적으로, 제프리 스콜러 등의 연구가 제시한 실험영화의 한계점과 홀로코스트 증언의 디지털화에 대한 최근 논의를 바탕으로, VR의 현상학적 몰입경험이 어떻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거나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는지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전통 영상 매체와 몰입형 VR 간의 역사적 의미 전달 방식의 차이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VR 기술의 미학적 가능성과 윤리적 함의를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융합적 접근은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역사적 장소의 표상을 다루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향후 VR을 활용한 역사 교육·기억 연구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Ⅱ. 기억의 장소로서 폐허

2-1 폐허의 개념과 역사적 배경

폐허는 자연적인 풍화, 침식 및 점진적 쇠퇴나 전쟁과 같은 폭력적 역사적 사건으로 갑작스럽게 파괴된 구조물의 결과로 형성될 수 있다.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유적지의 경우 전자의 점진적 쇠퇴는 역사적 장소로 간주 되는 반면, 후자의 급작스러운 파괴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폐허로 분류된다[1]. 전통적으로, 특히 도시계획 및 정치 담론에서 폐허는 바람직하지 않거나 일탈적인 행동을 위한 은신처로 간주 되었다. 예컨대 영국 정부의 보고서는 버려진 장소를 범죄와 위험이 연관된 황폐한 지역으로 묘사하였다[2].

현대에 이르러 황폐한 장소를 단지 의미 없는 흉물이 아니라 기억을 보존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홀로코스트 이후의 역사적 반성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영화학자 제프리 스콜러(Jefferey Skoller) 에 따르면, 홀로코스트의 경험은 서구 지식인들에게 그들의 인식론적 기반에 대한 깊은 자기반성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반성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가장 발전된 국가 중 하나로 여겨지던 독일에서 전체주의의 부상을 막지 못했다는 패배주의적 감정과 나치의 만행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실망에서 비롯되었다[3]. 이로 인해 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단절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과 기존의 문화적·철학적 패러다임이 야만성을 막기에 불충분하다는 비관적 인식이 확산되었다[3]. 스콜러의 주장에 따르면 폐허를 통해 기존 역사적 인식을 극복하는 연구는 199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으며, 특히 미국와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역사학자, 도시 계획가, 사회학자, 인류학자, 문화 비평가,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학제간 연구의 주제로서 폐허를 깊이 있게 다루게 되었다. 콜린 맥이완(C, McEwan)은 폐허가 현대적 서사를 형성하고 집단 기억을 재검토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고 분석했으며, 피에르 노라(P. Nora)는 폐허를 ‘기억의 장소(lieux de mémoire)’ 개념을 통해 폐허에서의 물리적 흔적이 역사적 의식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케이틀린 베이커(C. Baker)와 시오반 매튜스 (S. Matthews)는 폐허를 통해 현대 사회의 국가적 정체성과 문화적 기억을 재구성하는 문화적 공간으로 보았으며, 장 보드리야르(J. Bourriaud)와 마이클 디어(M. Dear)는 폐허가 국가주권의 지배적 서사에 저항하며 소외된 목소리를 부각 시키는 미적·정치적 수단이라고 논의했다. 이처럼 폐허를 학제간 연구의 주요 주제로 바라보는 관점은 기존의 역사적 인식과 서사 구조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촉진했다. 특히 20세기 후반 냉전 이후 포스트워(post-war) 시기에는 폐허의 알레고리적 특성과 장소성이 강조되면서, 폐허는 더 이상 단순한 물리적 흔적이 아니라 역사적 기억의 복합적 층위를 탐색하고 재해석하는 매개체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흐름은 폐허를 둘러싼 인식론적 반성과 윤리적 성찰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후 임마누엘 레비나스와 조르조 아감벤 등의 철학자들이 제기한 서구적 가치 체계에 대한 비판적 논의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전통적으로 그리스 사상에 뿌리를 둔 서양 철학은 역사적 사실을 객관화되고 고정적이며 영원한 것으로 해석하며,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관찰자(자아)를 세계와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4]. 이 관점에서 역사적 진리는 개인의 관점과 무관한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플라톤이 묘사한 로고스는 세계를 지배하는 객관적 합리적 질서였고, 인간은 자신을 합리적 존재로 이해하면서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근대를 휩쓴 계몽주의는 세계를 로고스에 의해 지배되는 체계적 질서로 이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는 이러한 서구 중심적 가치들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를 촉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서구 철학의 자기중심적 객관화를 비판하면서 타자에 대한 윤리적 철학을 촉구하였다. 레비나스는 이웃의 고통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모든 도덕적 악의 근원이며, 진정한 윤리는 타자에 대한 절대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하였다[5]. 아우슈비츠 이후, 레비나스의 사상은 서구적 가치에 대한 성찰의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했다. 동시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과 같은 사상가들은 수용소에서 일어난 극단적 인간 축소 상태를 탐구했다. 아감벤은 ‘무젤만(Muselmann)’의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수용소에서 모든 정체성을 빼앗기고 단지 생존하는 상태로 전락한 살아있는 죽은 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개념은 폐허를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의 공간으로 이해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감벤은 심지어 생존자들조차 그 공포를 완전히 증언할 수 없다고 언급하며, 트라우마의 극한 경험 앞에서 언어가 가진 근본적인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아감벤은 ‘아우슈비츠의 남은자들(Remnants of Auschwitz)’에서 아우슈비츠를 사람들이 벌거벗은 생명 상태로 축소된 공간으로 묘사하며, 이곳에서는 법이나 도덕을 초월한 구분 불가능의 영역(zone of indistinction)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예외적 공간에서는 정상적인 정치적·윤리적 범주가 붕괴된다[6]. 오늘날 폭력적 역사에 기인하는 폐허는 따라서 말로 표현할 수 없거나 침묵하는 공간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러한 장소들은 전통적인 언어로는 전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역사적 트라우마를 증언한다.

2-2 장소와 공간의 개념적 구분

일반적인 용법에서 장소(place)는 지역성, 애착, 특정 문화적 의미를 함축하는 반면, 공간(space)은 물리적 환경이나 차원과 같은 보다 추상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심리학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단순한 위치만으로는 장소감(sense of place)을 창출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의미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과 사람과 환경 간의 관계에서 발생한다[7].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가 도입한 '기억의 장소‘ 개념은 역사적·문화적 중요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한 국가나 민족의 집단기억이 결정화되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 기억의 장소들은 역사, 문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기억으로 충만하며, 사회의 역사적 의식을 유형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노라는 장소가 단지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이야기와 기념 행위를 통해 역사와 기억으로 충전된 공간이라고 강조하며 공간과 구분한다. 노라의 개념에서 기념 장소는 사회의 정체성과 역사를 정의하는 집단 기억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8]. 반면 ‘공간’ 은 더 중립적인 의미로, 이러한 의미 층이 없는 단순한 물리적 차원이나 영역을 지칭할 수 있다. 공간이 인간의 경험과 기억으로 충전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 칸트(Emmanuel Kant)가 철학적으로 표현했듯이, 공간(과 시간)은 우리가 특정 대상을 경험하기 전에도 우리의 지각 방식을 형성하는 인간 감성의 근본적인 틀이다[9]. 따라서 우리가 특정 장소를 경험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직관적 능력과 연결되어 있다 볼 수 있다.

2-3 폐허와 역사적 시간의 복합성

폐허의 맥락에서 공간과 장소 사이의 상호작용은 특히 두드러진다. 폐허는 물리적 공간(구조물의 물질적 잔해)과 기억이 충만한 장소(잔해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의미)의 융합을 구현한다. 과거는 폐허 속에서 썩은 구조물 형태로 물리적으로 존재하며, 일부 학자들은 이를 공간에 머무르는 유령으로 묘사한다. 예를 들어, 도시의 산업 폐허를 연구한 문화 지리학자 팀 에덴서(Tim Edensor)는 폐허가 과거가 마치 유령의 형태로 명백히 존재하는 장소라고 관찰했다[10]. 이 은유는 폐허 속에서 다양한 시간 층이 공존함을 시사한다. 즉, 현재의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층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과거의 보이지 않는 층이 공존한다. 이러한 장소는 붕괴된 구조물의 구체적 현실(장소)과 그것들이 자아내는 기묘하고 연상적인 분위기(미적 경험으로서의 공간)라는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노라의 기억 장소 개념은 폐허가 무의미한 잔해가 아니라 역사적 기억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임을 강조한다. 물리적 구조물이 파편화되었더라도, 남겨진 흔적과 조각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성찰을 촉발할 수 있다. 홀로코스트는 특히 전후 시기에 많은 폐허(수용소, 게토 등)를 집단적 애도와 추모의 장소로 변화시켰다[11]. 20세기 후반부터 홀로코스트 유적의 잔해가 보존되고 기념되면서, 이는 잔혹 행위에 대한 유럽 중심의 세계적 문화 기억 형성에 기여했다[11]. 생존자 증언이 언어와 이야기로 폭력적 역사를 보존하는 것처럼, 폐허 공간은 그 물리적 현존 자체를 통해 사건의 기억을 보존한다. 폐허는 폭력적 역사가 펼쳐진 시간적 맥락의 복잡성을 드러내며,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를 창조하고, 동시대의 관찰자들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접 마주하도록 한다. 따라서 폐허는 구두나 서면의 증언을 보완하는 비언어적 역사 증언의 형태로 간주 될 수 있다. 폐허를 보존하고 해석하는 운동은 특히 홀로코스트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 이러한 역사적 반성 운동의 일환으로 철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유지된 가정들을 재검토했다. 앞서 언급한 레비나스의 서구 철학의 자기 중심성 비판은 이러한 재검토의 하나였으며, 발터 벤야민의 연구 또한 폐허의 알레고리적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벤야민은 재앙적 사건 이후 역사가 단정한 선형적 내러티브가 아니라 적극적 해석을 요구하는 파편과 폐허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제안했다. 벤야민의 관점에서 폐허는 단지 역사의 잔해가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재해석하면서 지속적으로 의미를 생산하는 역동적 장소다. 벤야민에 따르면 폐허는 역사의 선형적 관점을 반박하는 내러티브를 제공하며, 근대의 파괴적 측면과 역사적 시간의 복잡성을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12]. 폐허는 역사를 승리 적이고 연속적인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파편화된 형태로 보여줌으로써 알레고리적으로 역사적 진리를 드러낸다.


Ⅲ. 폐허의 알레고리와 숭고

3-1 벤야민의 알레고리적 역사관

발터 벤야민의 폐허에 대한 논의는 과거가 상징적으로가 아니라 알레고리적으로 드러난다는 관점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폐허의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이를 강조한다. 벤야민의 알레고리적 역사관에서, 다양한 시간의 층이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감각적 경험은 과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벤야민에게 폐허는 단순히 파괴된 공간이나 빈 껍데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주관적 공간이다. 단일하고 고정된 의미를 상징하는 기호(symbol)와는 달리, 알레고리(allegory)는 파편적이고 개방적이며 해석자의 관점과 현재의 순간에 따라 달라진다. 벤야민은 알레고리적 맥락에서 역사적 사실들이 고정된 이미지나 의미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의 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생성된다고 주장했다. 스콜러의 말을 따르면 “알레고리는 주관적 기억과 현재의 사물에 대한 물리적 이해 간의 관계에서 새로운 역사적 실천의 가능성을 열어준다[3].”

전통적인 문학 비평에서 상징(symbol)은 일관되고 조화로운 것으로 간주 되었다. 즉, 상징은 형태와 의미가 완벽히 융합되어 있어 해석에 있어서의 모호성이 거의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알레고리는 형태와 의미 사이의 관계가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것으로 나타나며, 역사적으로 많은 비평가들은 이를 표현 방식 중에서도 하위의 것으로—일부 비평가들은 저속하고 하찮다고까지 생각하면서—치부해 왔다. 이러한 평가는 알레고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모순성과 파편성 때문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알레고리의 파편화가 오히려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통로임을 밝히면서 이를 재평가했다. 그의 저서 “독일 비극의 기원(Origin of German Tragic Drama, 1928)”에서 벤야민은 바로크 시대의 알레고리적 상상력이 역사를 폐허와 잔해의 연속으로 묘사하며[13], 쇠퇴와 덧없음을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영원히 완전한 의미를 가장하는 상징과 달리, 알레고리는 역사의 불완전성과 깨진 상태를 인정하며, 과거를 매시대마다 새롭게 주워 모아 다시 해석해야 하는 폐허의 형태로 드러낸다[14].

벤야민의 유물론적 역사관은 전통적 역사주의(historicism)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벤야민은 역사를 명확한 도덕적 또는 논리적 발전이 있는 고정된 사건의 연속으로 보는 대신, 지속적 으로 재해석이 가능한 열린 대상으로 본다. 벤야민에게 역사의 진실은 과거의 영구적인 이미지가 아니라“시간이 파열되는 순간”이며, 그는 이 순간이 현재에 무언가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13]. 그는 과거를 깨진 유리에 비유하면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우리는 과거를 추론할 수 있는 깨진 시간의 파편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 했다[3]. 알레고리적으로 작업하는 역사학자 또는 예술가는 승리의 서사 속에서 배제되었던 이러한 파편들(폐허와 흔적)을 수집하여, 현재와 소통하는 과거에 대한 대안적 이해를 구축한다. 벤야민은 폐허에서 역사적 성찰을 위한 중요한 공간을 발견한다. 즉, 폐허에서는 기존의 서술 방식이 파편화되어 있으며, 새로운 의미가 생성될 여지가 열려 있다. 따라서 폐허는 역사를 단순히 선형적 진보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을 반박하며, 역사의 양가성과 복수의 시간성이 공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알레고리적 접근은 폐허가 동시에 여러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의미한다.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폐허는 단순히 파괴나 부패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알레고리적으로 보면 같은 폐허가 손실과 죽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생존, 기억, 재탄생 또는 재해석의 가능성을 암시할 수 있다. 폐허는 계속해서 자신을 넘어 무언가 다른 것—부재 하는 것, 잃어버린 것, 아직 이해되지 않은 것—을 가리키며 기호학적 행위를 계속한다. 다시 말해, 폐허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관찰자에게 능동적 성찰의 과정을 초대하며, 우연성과 영속성, 죽음과 불멸, 파편화와 완전성 사이의 긴장을 협상하게 한다[15]. 폐허에 대한 이러한 다면적 관여는 시각적 관찰을 넘어선 것으로, 썩어가는 구조물 속에 담긴 기억, 역사, 존재론적 주제의 층을 성찰하도록 초대한다.

폐허는 서구 문명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합적인 재현 방식 중 하나이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미학적·철학적 관점에서 이해되어 왔다. 예를 들어 바로크 시대의 미학에서 폐허는 단순히 파괴의 상징으로만 여겨지지 않고 기억하는 행위 그 자체를 구체화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바로크 예술에서 폐허를 바라보는 관객은 쇠퇴한 형태를 통해 기억과 역사의 상호작용을 깊이 성찰하도록 초대받았다. 이후 낭만주의 시대에는 특정한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목적으로 폐허를 모방한 건축물(예: 정원 속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폐허와 같은 장식적 구조물)을 세우기도 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폐허의 숭고하고 우울한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낭만주의적 경향이 크게 유행했다. 경관 속에 자리한 폐허는 보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고, 쇠퇴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즐거운 명상을 촉진하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이 시기에는 폐허를 감상하는 행위 자체가 교양과 섬세한 감수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쇠퇴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고상한 미학적 태도를 반영했다[16]. 이후 수십 년 동안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미학적 축을 중심으로 폐허를 연구하면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의 폐허에 대한 인식 방식 및 쇠퇴와 고대성에 관한 당시의 문화적 태도를 심도 있게 탐구 하였다[16].

3-2 숭고(Sublime) 개념과 미적 경험

폐허의 미적 경험과 관련된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숭고이다. 숭고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하여 위대함이나 장엄함을 전달하는 의미로, 숭고의 개념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 시키는 경험을 묘사하기 위해 발전했으며, 종종 압도적이거나 공포스러운 현상과의 만남을 통해 발생한다. 롱기누스(Longinus)에서부터 버크(Burke), 칸트에 이르기까지 숭고는 미학의 주요 주제였다. 아름다움이 일반적으로 조화, 질서, 쾌락과 연관되는 반면, 숭고는 규모, 무형성, 경외와 공포의 혼합과 연관된다. 숭고에서는 합리적 이해(logos)와 감정적 반응(pathos) 사이에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한다. 칸트와 같은 철학자들은 숭고가 우리의 상상력이 어떤 대상(완전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거나 거대한 것)에 압도되어 처음에는 좌절하거나 두려움을 느끼지만, 이후 이성이 다시 작동하여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느낌을 줄 때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폐허는 장대한 규모의 일시성과 쇠퇴를 관객에게 직면하게 함으로써 숭고를 유발할 수 있다. 폐허는 우리로 하여금 시간의 개념, 인간 작품의 연약성, 모든 것의 엔트로피(entropy)를 보도록 강제한다. 이러한 직면은 숭고한 경험의 특징인 경외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폼페이 폐허와 거대한 베수비오 화산의 존재는 숭고한 풍경의 예시이다. 한편으로 관객은 발전된 로마 도시가 갑자기 화산재에 묻혀버린 삶의 일시성을 성찰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문명도 고고학적 노력으로 재발견되어 부분적으로 보존될 수 있다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돌이 된 인간 형상과 화산재에 얼어붙은 일상생활의 기이한 낯설음은 일시성과 영원의 무한한 순환에 대한 깨달음을 불러일으킨다.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한 “언캐니(uncanny)” 즉 익숙한 것이 예상치 못한 으스스한 맥락에서 만났을 때의 불편한 느낌을 자극 한다[17]. 폼페이의 경우, 언캐니는 평범한 인간의 삶이 죽음 속에서 기괴하게 보존된 것을 보면서 발생한다. 폼페이와 같은 폐허가 불러일으키는 우울함과 언캐니함은 숭고의 경험으로 나아가는 길을 연다. 칸트의 설명에 따르면, 자연의 힘(베수비오와 같은)이나 시간의 방대함과 직면했을 때 우리의 상상력은 무력함을 느끼지만, 이성을 통해 우리는 견디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깊은 감상을 얻는다. 초기의 공포는 감탄과 영적 고양으로 바뀌게 되며, 이것이 바로 숭고의 순간이다[18].

폐허의 숭고한 경험은 종종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결합 된다. 즐거움, 감탄, 심지어 아름다움이 한편에 있고, 침묵, 두려움, 위대함이 다른 한편에 있다. 이 조합은 아펠(Dora Apel)이 말하는 바와 같이 숭고의 느낌을 지속적으로 연장시키는 은유의 연속을 가능하게 한다[19]. 예를 들어 베수비오 화산 자체는 현재 조용하지만 역사적 으로는 치명적이어서 숭고한 성찰을 유도한다. 화산은 공포와 파멸, 그리고 자연의 위대함을 상징한다. 폼페이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재앙을 상상하며 떨기도 하지만, 먼 과거를 만지고 죽음을 직면하는 짜릿함도 느낀다. 폼페이의 석고 주조된 인체 형상은 미라나 뼈보다 더 무섭고 감동적일 수 있는데, 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을 생생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생명의 거의 사진 같은 네거티브, 형태가 주어진 공허함 으로서, 죽음의 직접적인 흔적이며 친숙한 인간의 형태이면서 동시에 충격적으로 낯선 빈 껍데기이다. 이 깊은 언캐니함을 직면함으로써 관찰자의 상상력은 두려움을 멈추고 오히려 그 장면을 깊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칸트적 용어로 표현하면, 마음은 두려움에서 일종의 고양 상태로 옮겨가며 죽음을 더 높은 이해나 수용으로 깨닫게 된다. 따라서 폐허의 숭고한 경험은 성찰과 영적 고양감을 가져오며, 일시성의 사실에서 일종의 영원성이나 연속성을 발견하게 한다.

3-3 폐허: 알레고리와 숭고의 상호작용

벤야민의 이론적 틀에서 폐허의 숭고한 측면은 또한 알레고리적 중요성을 지닌다. 벤야민은 폐허의 아름다움에 내재된 비밀스럽고 표현할 수 없는 본질이 드러나게 되면(예를 들어 폼페이의 석고 주형처럼 “공허에 석고를 붓는” 과정을 통해), 원래의 아름다움은 소멸 되고 대신 숭고함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20]. 다시 말해, 폐허의 본질적 의미를 완전히 포착하거나 표현하려는 시도(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것)는 필연적으로 그 신비로운 아우라를 파괴하지만, 그러한 파괴 속에서 새로운 의미, 즉 숭고한 진리가 확립된다. 그는 아름다움에서 숭고함으로의 이 전환을 디오니소스적 열정, 즉 영혼의 고양에 비유한다. 폐허에서는 사물의 소멸(즉, 그 즉각적이고 표면적인 의미의 붕괴)을 통한 통찰의 과정이 영원하거나 초월적인 관점을 열어준다. 따라서 폐허의 숭고는 알레고리적 미적 경험이 되며, 물리적 붕괴를 목격하고 이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관찰자는 단순한 아름다움의 외양을 초월하여 영속적이고 영원한 무언가를 엿볼 수 있게 된다. 폐허는 바로 그 쇠퇴의 상태 속에서도 역사를 알레고리적 형태로 보존하며, 해석을 기다리는 강력한 파편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관점에서 폐허가 가진 알레고리적 잠재력을 시각적으로 포착하고 탐구해 온 매체가 바로 영화이다. 영화는 폐허를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 시간과 기억의 복합적 층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해 왔다. 다음 챕터를 통해서 알레고리를 통해 역사적 시간의 결을 포착하려고 했던 시도들을 분석해보고 전통적 매체가 어떤 한계를 갖고 있으며 이와 비교하여 몰입형 가상현실을 통한 현상학적 구현이 이를 어떻게 보완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Ⅳ. 폐허를 기록한 영화들

4-1 영화에서의 폐허

영화 제작자들은 오랫동안 미적이고 서사적인 주제로서 폐허에 매료되어 왔으며, 특히 집단적 트라우마와 기억의 표현과 관련하여 폐허를 자주 다뤄왔다. 알랭 레네(Alain Resnais)의 다큐멘터리 영화 <밤과 안개>(Night and Fog, 1955)는 수용소의 역사적 영향을 초기에 탐구한 작품으로, 홀로코스트를 성찰하기 위해 수용소의 현대적 폐허 장면과 전쟁 당시의 영상을 교차시켰다. 이후 많은 다큐멘터리 및 실험 영화 제작자들이 자신들의 작품에서 폐허를 핵심적 요소로 활용했다. 클로드 란즈만(Claude Lanzmann)은 그의 대표작인 <쇼아>(Shoah, 1985)를 통해 폐허와 공터의 힘을 부각하며, 생존자의 증언과 잔혹 행위 장소의 영상을 통해 역사적 기억을 재구성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는 영화 제작자들이 폐허에 더욱 매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프리 스콜러에 따르면, 이러한 영화들은 전위적 역사 기술의 형태로 기능하며, 역사적 증언의 본질을 담고 있는 물리적 공간을 탐구하고, 시간의 돌이킬 수 없는 성질을 인정하며, 현재에 존재하는 과거의 현존을 포착하려 노력한다[21]. 이 과정에서 각 영화 감독은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에 접근한다. 스콜러는 이러한 영화들이 극적인 재현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다시 만들어내지 않고, 대신 현재 공간 속에 지속적으로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과 파편을 다루기 때문에 영화와 학제간 역사 연구 사이의 중요한 접점으로 본다. 다시 말해, 이들은 폐허 자체(그리고 생존자의 증언)를 역사적 증언으로 간주하고, 이 장소들에 대한 영화 제작자의 개인적이고 현상학적인 경험을 통해 의미를 표현하고자 한다.

다음 소개하는 두 작품은 영화라는 매체가 폐허의 공간적 의미를 현상학적으로 전달하고자 할 때 어떠한 상황에 마주하며 한계를 드러내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다니엘 아이젠버그(Daniel Eisenberg)의 <부분들의 협력>(Cooperation of Parts, 1987)과 어니 게르(Ernie Gehr)의 <시그널 – 독일 방송 중>(Signal – Germany on the Air, 1985)은 홀로코스트 기억과 폐허를 이러한 경험적이고 파편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두 영화 모두 홀로코스트 역사의 측면들을 기록하지만,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을 따르지 않고, 대신 콜라주, 부재, 그리고 주관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사건의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22]. 스콜러는 이러한 작품들이 재앙의 그림자를 부각 시키며 화면상에 온전히 드러나거나 말해질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표현 윤리를 지향한다고 언급한다[23].

4-2 다니엘 아이젠버그의 부분들의 협력

<부분들의 협력>은 1987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개인적 증언과 아카이브 영상, 그리고 현대적 풍경과 같은 다양한 내러티브와 시각적 스타일을 결합하여 기억과 트라우마, 시간의 흐름이라는 주제를 깊이 탐구한다. 1950년대 초반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아이젠버그는 이 영화에서 북유럽을 여행하며 자신의 부모가 경험했던 공간과 역사를 관찰자 시점에서 탐색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자녀로서, 그는 부모가 수감되었던 독일 다하우 수용소(Dachau concentration camp), 아버지가 갇혔던 강제수용소의 공간, 전쟁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폴란드의 도시 풍경, 그리고 어머니가 거주했던 집을 영화적 관찰을 통해 탐구한다. 홀로코스트와 과거를 영화로 묘사하는 그의 방식은 관찰자로서 자신이 느끼는 감각적 경험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있다. 감독은 부모가 살았던 공간을 1인칭 시점으로 촬영하며, 자신의 감정을 영화적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다하우 수용소는 20세기를 경험한 유럽인들의 기억에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는 장소이다. 카메라는 1인칭 시점으로 공간을 탐구하며, 처형실 내부와 신체 절단에 사용된 도구들, 총탄 흔적이 남아 있는 묘비들 등을 세밀히 담아낸다. 카메라는 장면의 사물과 공간을 꼼꼼히 기록하지만, 내레이션과 음향을 함께 제시하면서도 이 기록이 현재 시점에서 보이고 기록될 수 있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을 밝히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시작은 뤼미에르 형제(Lumière brothers)의 최초 영화인 <라 시오타 역으로의 열차 도착(The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Station, 1896)>의 한 장면으로 열차가 역으로 들어와 정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는 열차의 도착과 출발이라는 은유를 통해 감독의 아버지와 연결된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재구성한다. 제프리 스콜러는 아이젠버그가 홀로코스트 서사를 열차의 이미지로 시작하는 방식을 영화 <쇼아>(Shoah)에 대한 참조로 보았으며, 이는 종말과 단절에 대한 불길한 감각을 표현한다고 설명한다[24].

Fig 1.

Cooperation of Parts, scenes from artwork and screen captures

이 영화는 아카이브 영상, 개인의 증언, 현대적 풍경 등 다양한 요소를 혼합한 비선형적 내러티브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본 작품에서 내러티브와 텍스트는 일상의 정보를 담고 있는 이미지들에 개인적 사유의 의미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예술가의 내러티브는 공간 내의 낙서로 기록된 글귀, 아버지로부터 전해 내려온 유대인 속담, 어린이들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 속의 언어 등으로 공간에 새겨져 있다. 작가는 개인적 기록과 미상의 인물에 의해 작성된 텍스트를 결합함으로써, 자신이 부재하는 역사적 맥락 속 공간의 알레고리적 본질을 드러낸다. 영화에서 1인칭 카메라는 그가 보고 경험한 것을 보여주며,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파편화된 공간의 흔적이다. 카메라에 의해 포착된 장면들은 그 자체의 배열을 통해 문학적 의미를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속담, 라디오 음향 등 기억의 암호로 해석될 수 있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파편적 구성을 통해 공간의 알레고리를 묘사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에서 사진이 기억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푼크툼(punctum)과 스투디움(studium)의 대비적 개념을 통해 설명한 바 있다[25]. 바르트는 푼크툼을 촬영된 장면과 개인적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스투디움을 사진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관습적 코드로 보았다. 아이젠버그의 <부분의 협력>은 스투디움 내부에서 자신이 갖지 못한 푼크툼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이는 아이젠버그가 이미지 내에서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시점에 의존하는 대신, 관객이 영화 속 예술가의 시선과 일치된 위치에서 영화가 제시하는 집단적 기억과 역사적 감각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만의 개인적 시점을 발견하게 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4-3 어니 게어: 시그널 – 독일 방송 중

어니 게어(Ernie Gehr)의 1985년 작품 <시그널 – 독일 방송 중>은 역사적 공간 내부의 보이지 않는, 유령과 같은 본질을 묘사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영화는 아이젠버그의 방법론과 유사하게 현재에 남아 있는 역사적 기억의 잔재를 수집하고 제시하는 영화적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젠버그가 가시적 풍경에서 역사적 파편들을 수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은 청각 매체를 통해 역사적 알레고리를 구성하는 데 더 깊이 파고든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Fig 2.

Signal – Germany on the Air, scenes from artwork and screen captures

이 영화가 시작될 때, 현대 도시의 고요한 풍경이 특별한 특징 없이 묘사되며 구체적인 시간적 맥락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각 장면 전환 사이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플래시 프레임은 마치 누군가의 기억처럼 느껴지게 한다. 영화는 유럽 도시의 전형적이지 않은 오후 풍경을 보여준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제시되는 평범한 정보에 대해 추측하며 호기심을 느끼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선이 거리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독일어로 된 표지판들이 점차 등장하며, 이곳이 한때 홀로코스트와 관련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다가 화면에 독일어로 ‘나치 가스실(Nazi Gas Chamber)’이라는 명확한 표지가 나타나며, 이 장소의 본래 목적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로써 영화 속의 현재 공간과 공존하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고고학적 진실은 점차 드러난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그 공간이 홀로코스트 당시 가스실이 있던 곳임을 알려주는 기호들이 서서히 나타난다.

어니 게어는 이 영화에서 마치 스케치하듯 현재의 도시 풍경을 담아내며, 공간의 의미를 주로 청각적 요소를 통해 전달한다. <시그널 – 독일 방송 중>은 홀로코스트 시기의 음향 자료, 역사적 방송과 연설, 전후 직후의 라디오 방송 등 여러 시대의 다양한 아카이브 오디오 클립을 활용하여, 관객을 소리를 통해 시간 속으로 이동시킨다. 이러한 음향 요소들은 특정 시기와 사건을 나타내는 청각적 지표로 작용하며, 영화의 추상적인 시각 이미지에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부여한다. 게어는 의도적으로 음향 요소들을 왜곡하거나 조작함으로써 이질감을 창출한다. 여기에는 녹음 속도나 음정의 변경, 반향이나 울림 효과의 추가, 또는 다층적인 사운드 레이어링을 통해 밀도 높고 질감 있는 음향 풍경을 만드는 작업이 포함된다. 이러한 음향 조작은 역사가 시간이 흐르며 기억되고, 잊히고, 변형되는 방식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영화의 시각적 추상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관객들이 기억과 역사의 주관적 특성에 대해 성찰하도록 초대한다. 여기서 폐허의 ‘유령적 이미지(ghostly image)’는 공간에 더 이상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강한 감정이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나 사건의 잔재나 영향을 의미한다. 케빈 헤더링턴(Hetherington)이 언급한 것처럼, 유령적 이미지는 공간에서 부재하지만 여전히 의미적 영향을 미치는 무엇이다[26]. 이와 같은 영화적 표현은 관객이 단지 콘텐츠를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미디어와 감각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강조한다. 이러한 측면은 미디어가 개인에게 미치는 인지적, 감정적 영향에 대한 논의와도 연결되며, 미디어와의 감각적 상호작용이 지각과 기억의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탐구하게 한다.

4-4 영화를 통한 구현의 한계

전통적 다큐멘터리는 일반적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제시하여 관객을 계몽하거나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어니 게어의 추상적인 이미지는 명확한 재현적 내용을 배제하고 주관적 해석을 유도하는 형식을 채택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다큐멘터리가 단일하고 객관적인 현실만을 전달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며, 진실이 다면적이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지닌다는 점을 제안한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는 일반적으로 명확한 시작, 중간, 끝이 있는 선형적 내러티브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게어의 작품은 베를린을 폐허로 인식하면서 그 역사적 중요성을 드러내며 파편적이고 중첩된 비선형적 구조를 통해 내러티브 해석을 거부한다. 이러한 비선형적 접근은 발터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과 같이, 관객이 영화의 형식과 내용에 더욱 깊이 관여하여 작품의 주제와 의도를 독립적으로 이해하도록 초대한다. 이는 다큐멘터리의 의미가 단지 보여지는 것뿐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가에도 드러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 논의된 두 작품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관객의 경험을 필터링하고 프레이밍하며, 영화 제작자가 결정한 특정 방식으로 주목과 해석을 유도한다. 프레이밍을 통한 이러한 시선의 통제는 폐허에 대한 직접적이고 몰입적인 경험에서 관객을 소외시킬 수 있다. 영화는 스토리텔링에 강력한 매체이지만, 폐허에서의 다감각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을 온전히 재현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관객이 영화 속에서 폐허를 마주할 때, 각자의 배경, 믿음, 감정을 통해 이미지를 해석하기 때문에 의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이는 보편적으로 동의 가능한 해석에 도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로, 영화가 기호와 상징을 통한 의미 전달 체계를 가진 매체로 간주할 때, 이러한 수사적 표현 방식은 폐허의 현상학적 경험의 깊이를 온전히 전달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 시각 매체로서 영화는 현상학적 경험의 일부 측면을 포착할 수 있지만, 폐허에 대한 개인적 해석과 감정적 반응의 풍부하고 복잡한 층위를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 폐허에서 이루어지는 알레고리적 상호작용과 달리, 영화는 미리 정해지고 편집된, 종종 극화된 재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경험의 진정성을 손상시키고 현상학이 강조하는 개인적이고 성찰적인 참여를 약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니엘 아이젠버그의 <부분들의 협력>에서는, 다하우(Dachau)의 폐허가 지닌 역사적 공간의 진리적(alethic) 의미 위에 자신 부모 세대의 기억을 중첩시켜 전달하려는 감독의 관점이 영상의 구성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관객은 이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감독의 의도가 다하우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관점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이는 관객 각자에게 고유한 방식으로 경험될 가능성이 있다. 어니 게어의 작품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젠버그의 작품에서 부모의 일기에서 나온 나레이션의 의미가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과거 방송에서 들리는 사운드의 의미가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묘사된 도시 공간의 알레고리적 의미는 수사적으로만 드러날 뿐, 객관적 의미 체계를 확립하는 데 어려움과 한계가 있다. 촬영의 타이트한 프레이밍이나 이미지의 특정 구조화가 때때로 관객을 장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서 멀어지게 하는 시각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다큐멘터리보다 더욱 감각적으로 자극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들은 영화 매체의 한계를 보여준다. 즉, 프레이밍과 몽타주를 통한 관점의 통제가 폐허와의 완전한 몰입적이고 다 감각적인 만남으로부터 관객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27]. 영화는 강력한 스토리텔링 도구이지만, 폐허 속에 실제 존재하는 듯한 체화된 경험을 완벽히 재현하지는 못한다. 영상은 평면적이며 스크린이라는 경계에 의해 제한되고, 현장의 복잡한 층위의 지식은 전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챕터에서 논의했던 영화들은 표현의 경계를 확장하면서도 동시에 영화가 현상학적 본질을 전달할 때 나타나게 되는 본질적 한계를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의 한 가지 결과는, 2차원적인 시청각 매체로서의 전통적인 영화가 역사적 장소의 완전한 3차원적 물질적 존재감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이는 장소의 공간적 복잡성, 질감, 진정한 규모를 관객이 이해하는 데 제한을 둔다. 아무리 예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라 할지라도, 관객은 여전히 폐허의 재현을 “창문”(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는 관찰자로 남는다. 이러한 프레이밍은 몰입감을 줄이고, 관객이 공간의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도록 만든다[24]. 물론 이 거리감은 (감정적 압도 대신 성찰을 장려하기 위해) 의도적일 수 있지만, 그것은 항상 무언가 부족한 상태를 의미한다—즉, 실제 폐허 속에 존재할 때 느끼는 다감각적이고 주관적인 만남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화 현상학 이론가들은 이러한 한계를 지적하면서, 영화 경험이 가장 몰입적인 순간조차 관객의 상상력에 의존하여 감각적 공백을 채워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무너진 벽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직접 현장에서와 같이 거친 돌의 질감이나 공기의 차가움을 느끼거나, 거대한 폐허의 실제 규모를 전신으로 감지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몰입형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같은 새로운 매체들이 폐허를 기록하는 데 있어서 다른 접근 방식을 제시하게 된다.


Ⅴ. 몰입형 가상현실(VR)을 통한 폐허의 구현

5-1 VR 콘텐츠의 등장과 현상학적 몰입

몰입형 가상현실(VR)의 등장과 함께, 영화 제작자와 예술가들은 역사적 트라우마의 장소를 기록하고 체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VR 기술은 폐허에 대해 더 신체화된 참여를 가능하게 하여, 전통적인 영화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주목할 만한 사례는 가보 아로라(Gabo Arora)와 아리 팔리츠(Ari Palitz)의 VR 다큐멘터리 <라스트 굿바이>(The Last Goodbye, 2017)이다. 이 작품은 이전의 전위 영화(<부분들의 협력>, <시그널 – 독일 방송 중>)와 의도상 유사하게 수용소의 장소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마주하지만, VR을 통해 현상학적 몰입을 극대화한다. <라스트 굿바이>는 폴란드의 마이다넥(Majdanek) 수용소로 관객을 안내하며, 360도 비디오 영상과 상호작용 가능한 3D 컴퓨터 생성 이미지의 조합을 사용하여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를 전한다.

Fig. 3.

The Last Goodbye, scenes from artwork and screen captures

<라스트 굿바이> 에서 사용자는 마이다넥 수용소의 실제 폐허 현장에 가상으로 위치하게 된다.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교육자인 핀카스 구터(Pinchas Gutter)의 증언을 따라가며, 그가 캠프를 안내한다. 이 체험은 두 가지 형태가 통합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수용소 폐허의 실제 모습을 촬영한 360도 영상으로, 관객은 주변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두 번째는 3D로 모델링된 역사 현장의 재현으로, 사용자가 자유롭게 탐색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다. 서사는 핀카스가 실제로 마이다넥을 방문하여 남아 있는 구조물 사이를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가상으로 그와 동행할 때, 그는 막사 내부와 다른 장소들을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묘사하며, 가족과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친밀하게 회상하여 공유한다. 본질적으로 핀카스는 침묵의 증인이자 안내자로서 관객을 먼 거리의 관찰자가 아닌 적극적 참여자로 변화시킨다. 1인칭 시점을 통한 동일시(즉, 핀카스의 시선을 통해 캠프를 사람의 눈높이로 보게 되는 방식)를 통해, 관객은 현장의 공간적 구성을 인지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핀카스는 나치가 피해자들을 속여 샤워실이라 믿게 했지만 실제로는 대량 학살에 사용된 장소 내부를 보여준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바로 이런 곳이었어요. 제가 들어왔을 때, 저는 이 샤워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르샤바 게토에서 나치들은 사람들이 샤워를 하러 간다고 믿게 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 대신 치명적인 가스가 샤워 헤드에서 나왔죠.”

그는 죽음이 임박했다는 두려움을 생생히 묘사하며 “저는 곧바로 기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라고 덧붙인다[28]. 이러한 말들의 사운드가 구현 될 때 체험자는 증언자인 핀카스와 같이 실제 장소에 시뮬레이션 됨으로서 공간적 유대감을 통한 공감이 형성된다. 관객은 단지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음향을 통해서 공간과 동기화 된 음향 효과를 통해 샤워실을 직접 둘러보며 핀카스의 떨리는 목소리가 벽에 울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경험의 중심에 관객을 위치시킴으로써, <라스트 굿바이>는 단지 사실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우리가 수용소의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대한 현상학적 질문을 우선시한다. 이 작품은 VR이 지닌 현전감(presence) 전달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 현상학적 영향력은 매우 깊다. 관객은 가상으로 막사나 가스실 내부에 서서 모든 방향을 둘러볼 수 있으며, 이는 평면적인 영화가 제공할 수 없는 개인적이고 체화된 관점을 형성한다. 폐허가 지닌 알레고리적 의미—즉, 기억과 트라우마, 역사를 나타내는 방식—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드러난다. 평면적인 영화에서는 폐허의 표현이 감독의 프레이밍에 의해 매개되지만, VR에서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매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더욱 자유롭게 세부 사항을 탐색하고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는 폐허의 역사적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며, 경험을 보다 즉각적이고 공감적으로 만들 수 있다.

Fig 4.

A Promise Kept, scenes from artwork and screen captures

앞서 소개한 <라스트 굿바이>가 ‘마이다넥 수용소’라는 실제 장소 전체를 1 대 1 스케일로 스캔하여 ‘장소’ 의 의미가 가진 현전감을 구현하는데 주력했었 다면, 미국 일리노이주의 홀로코스트 박물관(Illinois Holocaust Museum)에서 제작 한 <A Promise Kept>는 남겨진 가족 유품·오디오 다이어리를 중심으로 ‘부재·상실’의 정서를 전면에 내세워 장소 자체보다 기억을 남기는 행위와 개별적 추모 감정을 강조한다. 이들 작품은 생존자(프리드지 프리츠쉘, 조지 브렌트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관객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역사적 현장을 360도 영상과 3D 스캐닝으로 체험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사용자는 VR 헤드셋을 쓰고 수용소의 내부와 주변을 자유롭게 둘러보면서, 전통적인 평면 영상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현장의 규모와 공간적 맥락까지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29]. 이 두 작품은 VR 환경에서 관객이 자신의 몸과 시선을 통해 파편화된 단서를 능동적으로 수집하고 의미를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체험 자체를 알레고리적 행위로 볼 수 있다. 관객은 가상 폐허 공간에 산재한 흔적들과 오브젝트들을 일종의 “역사 파편”으로 받아들이며, 현재의 맥락 속에서 과거 사건의 의미를 재조합하게 된다. 이러한 능동적 의미 구성 과정은 발터 벤야민이 강조한 알레고리적 역사인식과 상통하며, VR은 사용자의 체화된 지각을 통해 그러한 알레고리적 해석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매체가 된다. 다시 말해, VR 속 폐허는 더 이상 일방향적으로 의미가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관객의 지각과 상호작용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계속해서 드러나는 ‘살아있는’ 기억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또한 VR의 강렬한 몰입 경험은 관객으로 하여금 폐허의 숭고미와 언캐니(uncanny)함을 직접 체감하도록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무도 없는 가스실 내부를 가상으로 거닐며 들려오는 한 생존자의 목소리를 마주하는 순간, 관객은 현재와 과거,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독특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섬뜩하면서도 경외감을 자아내는 감각은 앞서 논의한 폐허 미학의 언캐니함이 VR이라는 매체를 통해 현전적으로 재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몰입형 VR은 폐허에 내재된 다층적 역사성과 정서를 보다 직접적이고 친밀한 방식으로 전달함으로써, 관객을 역사적 진실의 알레고리적 공간 속으로 초대하는 새로운 통로를 열어주고 있다.

앞서 소개한 세 작품이 아우슈비츠가 갖고 있는 폐허의 역사성을 알레고리적 구성으로 보여주었다면 캐나다 국립영화위원회(NFB)가 제작한 몰입형 VR 작품 <Biidaaban: First Light, 2018>은 장소가 가진 잠재적 의미를 알레고리적으로 구현 했다는 점에서 매체가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연에 잠식된 미래 토론토를 배경으로, 관객의 신체적 참여를 통해 폐허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앞서 논의한 폐허의 기억과 권력, 신체화 개념이 모두 이 작품에 응축되어 나타나며, VR 특유의 표현 양식을 통해 새로운 윤리적 물음을 제기하기도 한다.

캐나다 출신의 예술가 리사 잭슨(Lisa Jackson)이 감독한 본 작품은 “선광(첫 새벽빛)”이라는 뜻의 캐나다 원주민이 쓰는 애니시나아베모윈(Anishinaabemowin) 단어 Biidaaban에서 제목을 따왔으며, 근미래의 토론토 도심이 자연에 의해 잠식된 모습을 사실적으로 구현한 룸스케일(room-scale) VR 경험을 제공한다[30]. 앞서 소개한 세 작품이 고정된 위치에서 고개의 방향 변화에 따른 상호작용을 체험하는 3축 (3DOF, Degree of Freedom) 작품 인 반면 본 작품은 공간을 자유롭게 걸어 다니면서 체험 할수 있는 6축 (6DOF) 작품으로서 사용자는 VR 헤드셋을 쓰고 약 5~7분 동안 가상의 토론토 거리를 거닐며 작품을 체험하게 된다. 이 VR 작품이 묘사하는 공간은 인간의 활동이 멈춘 뒤 식생이 자리잡은 미래의 도시 토론토로, 현대 도시가 폐허가 된 탈산업 풍경이자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이미지를 연상시킨다[31]. 관객은 토론토 시청 앞 나단 필립스 광장에 들어서게 되는데, 주변에는 도시의 소음이나 인적 활동이 사라져 있고 대신 풀벌레 소리와 전기불이 꺼진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빛이 공간을 채운다. 금이 간 콘크리트 보도 사이로 나무와 덩굴식물이 솟아나와 건물 외벽을 뒤덮고, 한때 번잡했던 도시 한복판이 자연의 침투로 황폐하면서도 신비로운 정적의 장소가 되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도시 폐허를 단순한 몰락의 장면이 아니라 생태계의 회복 공간으로 그려낸다. 실제로 감독 잭슨은 이 미래 토론토를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이룬 도시 풍경”으로 구상했으며, 작품 전반에서 인간중심의 문명이 쇠퇴한 자리에서 자연과 전통 문화가 되살아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령 작품 속 지하철역 승강장에는 전통 카누가 뒤집혀 놓여 있는데, 이는 물에 잠긴 지하철 터널에서 기차 대신 카누로 이동하는 미래를 은유한다. 이처럼 <Biidaaban: First Light>가 다루는 공간은 현대 도시 문명의 잔해를 배경으로 자연의 귀환과 토착 문화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이다.

Fig. 5.

Biidaaban: First Light, scenes from artwork and screen captures

작품은 6축 기반 콘텐츠로서 특별한 미션이나 게임적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체험자의 몸의 위치와 보는 방향에 따라 발생하는 시청각 요소들을 통해 폐허가 가진 현상학적 의미를 전달 하는데 초점을 둔다. 토론토의 옛 이름 Tkarón:to가 나타내듯이 작품 속에서는 사용자의 시선이 머무는 지점에 따라 원주민 언어(웬дат, 모호크, 오지브웨)로 된 텍스트나 음성이 등장하며, 이를 통해 과거 이 땅에서 불렸던 지명과 토착민들의 감사 기도를 접할 수 있다[32]. 이 작품은 6축 기반의 콘텐츠 구성 이외에도 신체 감각적 요소를 고려한 설치 연출을 포함하고 있다. VR 체험을 마치고 나오는 관객이 마주치는 암실에 실제 살아있는 거북이를 배치하여, 가상 환경에서의 자연과 현실의 자연을 이어주는 물리적 자극을 제공했다. 이러한 연출은 VR 경험에 촉각적·공간적 현실감을 더해주는 실험적 시도로 평가받는다. 즉, <Biidaaban: First Light>의 체험 구조는 단순히 눈과 귀로 보는 것을 넘어 관객의 몸 전체를 가상 폐허 공간에 참여시키도록 설계되어 있다. <Biidaaban: First Light>의 폐허 이미지는 철저히 알레고리적 층위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무너진 도시는 한편으로 산업문명 및 식민지 도시의 종말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그 폐허 위에 자연과 토착 문화가 새벽빛처럼 되살아나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는 본 논문에서 논의한 ‘폐허의 알레고리’ 개념 – 예컨대 폐허가 단순히 과거의 몰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와 성찰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관점 – 와 맞물린다. 잭슨 감독은 이 작품이 흔히 연상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와 다르다고 강조한다[33]. 일반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는 주인공이 폐허가 된 환경과 맞서 싸우며 고통받는 모습을 그리지만, <Biidaaban: First Light>에서는 인간 주인공조차 등장하지 않은 채 자연과 도시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관객들 역시 이 세계를 두려움이 아닌 경이로움과 명상적 분위기 속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실제로 초기 상영 당시 일부 관객들은 “좀비가 튀어나올 것 같은 종말 시나리오”를 예상했으나, 이내 작품의 아름답고도 사색적인 분위기에 놀라워했다는 후기가 있다[34]. 이러한 반응은 폐허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반영한다. 감독 잭슨은 “관점을 달리 보면 종말은 이미 (과거에) 일어났다”고 언급하며[35], 이 작품을 서구 문명이 끝난 뒤 이미 일어난 종말의 잔해 위에서 시작되는 다른 미래로 해석한다. 이는 식민지 역사로 파괴된 토착 문화의 부흥을 암시하는 알레고리로 볼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웬데트어나 모호크어 같은 원주민의 언어가 도시 공간에 다시 울려퍼지는 장면은, 언어와 문화 기억이 폐허 속에서 되살아남으로써 권력의 전복과 치유의 과정을 상징한다[36].

이 작품은 현상학적 관점에서 볼 때 VR 매체의 특징인 신체화(embodiment)와 시간·공간 경험을 극대화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신체를 통해 세계를 지각하고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몸소 넘나들며 경험을 구성한다. <Biidaaban: First Light>는 이러한 신체적 지각을 VR 기술로 재현함으로써, 관객이 단순히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폐허 공간 ‘안에 존재하는’ 듯한 체험을 가능케 한다. 거대한 빌딩의 옥상 가장자리까지 몸을 움직여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 느끼는 아찔함, 혹은 침수된 지하역사 안을 고요히 떠돌며 들리는 자연의 소리에 집중할 때 느껴지는 몰입감은, 카메라 화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영화와는 다른 1인칭 체험의 현존감(presence)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작품에서 사용자가 허리를 굽혀 바닥의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주변을 탐색하는 행위 자체가 의미 생성의 과정이 된다. 잭슨 감독도 “VR에서는 관객을 의미로 가득 찬 공간에 놓아두면서도 특정 의미를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고 성찰하도록 만든다”고 언급한 바 있다[37]. 이렇듯 현상학적 시간·공간 감각과 신체화된 지각을 통해, <Biidaaban: First Light>는 관객에게 영화나 사진과 구별되는 깊은 체험적 인상을 남긴다.

앞서 소개한 사계들로부터 볼 때 전통적인 영화와 몰입형 VR 작품은 매체 표현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다. 첫째, 시점과 관람 방식의 차이가 있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연출자가 선택한 2차원 화면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구조인 반면, VR은 관객이 3차원 공간 안으로 들어가 주체적으로 살펴보는 구조이다[38]. VR 아트에서는 관객이 머리와 몸을 움직이는 대로 시각적 화면이 연동되며, 창작자가 완성한 공간 안을 관객 각자가 저마다의 경로로 탐색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관객은 작품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심지어 콘텐츠 경험을 부분적으로 자기화(personalize)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33]. 둘째, 감각적 영역의 폭과 ‘현존감’이 다르다. 영화는 시각과 청각에 국한된 간접 경험을 제공하지만, VR은 시각·청각은 물론 사용자의 운동감각과 평형감각까지 동원한 멀티센서리(multi-sensory) 체험을 구현한다. 셋째, 서사 전개와 시간 처리의 방식이 상이하다. 전통 영화는 편집과 몽타주를 통해 작가가 통제하는 시간 순서와 화면 구도를 따라야 하지만, VR 경험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체험이 이루어진다. 관객이 어느 부분을 오래 바라볼지, 공간을 얼마나 천천히 혹은 빨리 둘러볼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작품은 이러한 개인별 상이한 탐색 경로를 포용한다. <Biidaaban: First Light>의 경우에서 처럼 특정 플롯을 쫓기보다는 환경을 직접 체험하며 의미를 발견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관객마다 주목하는 요소나 감정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차별성은 이론적으로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우선, VR은 관객을 창작자가 설정한 세계 안으로 현존하게 함으로써, 예술 감상의 경계를 허물고 ‘체험’ 그 자체를 예술의 일부로 재정의한다. 이는 전통적 스크린 매체와 달리 관객의 신체와 감각을 예술 체험의 매개로 삼는 매체로서, 새로운 미학적·윤리적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VR은 이야기 전달자와 수용자의 경계를 흐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 공동 창작자적 위치에 서게 하는 측면이 있다[39]. 관객이 어디를 볼지, 무엇을 경험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VR에서는, 전통 영화에서 감독이 절대적으로 쥐고 있던 서사 통제권이 다소 분산된다. 이러한 매체상의 변이는 예술 수용의 주체성, 기술 매개의 역할, 현실과 가상의 경계 등 이론적 쟁점을 새롭게 제기한다.

5-2 가상현실을 통한 구현에 있어서 윤리적 쟁점

VR은 몰입감을 향상시키는 매체적 장점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이러한 장점은 표현과 윤리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야기 시킨다. <라스트 굿바이>, <A Promise Kept>의 제작자들은 실제 영상과 CGI 재현을 결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서는 논란이 될 수 있는 전략으로, 컴퓨터 생성 요소의 추가가 진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VR에서는 실질적인 목적이 있다. 마이다넥의 특정 지역이나 특정 분위기는 실제 영상으로 완벽히 포착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상호작용은 디지털 환경을 필요로 한다. 학자 마리아 잘레프스카(Maria Zalewska)는 <라스트 굿바이>가 홀로코스트 증언의 가상화를 개척한 사례라고 지적하며, 생존자 증언의 생생한 충격과 VR이 가능하게 하는 공간 탐색을 결합했다고 언급한다[40]. 이 프로젝트는 때로는 시각적 정확성보다 현상학적 진정성(즉, "그곳에 있는 느낌")을 우선시한다. 이 작품은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 장소의 문자적 영상과 깊은 감정적 참여를 허용하는 장소의 느낌 재현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다. 후자를 우선시함으로써, <라스트 굿바이>는 사용자를 알레고리적 위치에 놓는다. 사용자는 문자 그대로 수감자나 생존자는 아니지만, 말하자면 증인의 입장에서 그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 결과 폐허는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공감과 이해의 무대가 되며, 과거가 통제되고 안내된 방식으로 현재에서 경험될 수 있게 된다.

VR을 활용함으로써 이 프로젝트는 앞서 언급한 전통적인 영화의 중요한 한계, 즉 다감각적이고 신체화된 상호작용의 부족을 해결한다. VR에서는 시점이 항상 감독에 의해 엄격히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하늘을 바라보거나 문을 향하거나 환경의 유물에 머무르는 등 자유롭게 시선을 움직일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강력한 주체성과 개인적 연결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메를로-퐁티(Merleau-Ponty)의 '절대적 여기'(absolute here)의 개념을 반영한다. 즉, 신체가 지각 세계의 중심이라는 개념이다. VR에서는 관객의 가상 신체(종종 단지 시점)는 외부에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수용소 내부에 위치한다. 폐허의 물질성(풍화된 목재, 콘크리트 벽, 진흙 땅)은 입체적으로 지각될 수 있으며, 실제 장소를 경험하는 방식과 일치하는 깊이와 공간적 방향감을 제공한다. 메를로-퐁티는 우리의 지각이 본질적으로 신체화되어 있으며, 공간을 신체의 방향성을 통해 이해한다고 강조했다[41]. VR 경험은 사용자가 머리를 돌리거나 심지어 걸어 다니면서 가상 공간을 탐색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이러한 개념을 활용한다. 이로써 메를로-퐁티의 “나는 공간과 시간에 속하며, 내 신체는 이들과 결합하여 포함된다”는 개념이 매우 구체적으로 실현된다[42]. 관객은 실제로 마이다넥에 있지는 않지만, 시각적·청각적 자극과 신체 움직임이 가상 세계에서의 움직임과 대응하여 마치 부분적으로 그곳에 있는 것처럼 감각적으로 반응한다.

메를로-퐁티는 또한 주체와 객체, 자아와 세계가 뒤얽혀 있는 “차즘”(chiasm)의 개념을 제시했다. 실제 폐허 현장에 몸으로 존재할 때 우리는 흔히 이러한 교차적 관계를 느끼게 된다. 즉, 장소가 우리를 ‘응시하며’, 우리는 장소의 역사와 마주치고 우리의 이해를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VR 환경에서도 이와 유사한 얽힘이 발생할 수 있다. VR을 통한 폐허의 체험은 단순히 시각적이거나 인지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고, 전인적이고 체화된 관여로 발전할 수 있다. 가상 폐허는 지각하는 사람의 행동(머리를 돌리거나 움직이는 것 등)에 반응하고, 지각자는 환경에 대해 다시 정서적이고 인지적인 반응을 경험한다. 마치 공간 자체가 상호작용에 참여하여 피드백 루프를 생성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메를로-퐁티가 말했듯이 지각 과정에서 지각자와 지각 대상 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43]. 그에게 있어서 본다는 것은 곧 만지는 것과 유사하며, 만지는 것은 보는 것과 유사하다. 실제로 VR에서의 '보는 행위'는 촉각적 차원을 갖는다. 예컨대 가상 벽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관객은 더욱 폐쇄감을 느끼며, 캠프의 탁 트인 장소에 서 있으면 노출감을 체감하게 된다. 가상 환경은 실제 물리적 접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균형 감각과 방향 감각에 영향을 미치면서 관객을 ‘만진다’.

메를로-퐁티가 논한 주체와 객체의 가역성(reversibility)—즉, 우리가 어떤 것을 만질 때 우리 역시 만져지는 느낌을 받으며, 볼 때에도 우리가 보여질 수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은 VR 환경에서 새로운 층위를 얻게 된다. VR로 재현된 폐허 현장에서는 과거가 우리를 되돌아 응시하는 기묘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가역성은 우리가 체화된 경험에서 느끼는 모호성을 강조한다. 즉, 우리가 폐허를 탐험하는 것인지, 아니면 폐허(그리고 폐허가 간직한 역사)가 오히려 우리를 탐구하며 우리의 이해 능력을 시험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사용자가 가상 가스실 내부에 서 있으면, 마치 공간 자체가 기억의 무게로 그를 마주하는 듯한 경험이 발생한다. 이는 지각자와 폐허의 물질성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다. 이러한 교차적 얽힘을 통해 폐허라는 공간은 더 이상 수동적인 배경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가 된다. 과거와 현재는 상호 얽히고, 공간 속 사용자의 존재는 과거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의 부재와 대화를 형성한다. 결국 관객은 장소에 담긴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물질성과 직접 대화하는 상황에 놓인다.

제프리 스콜러가 폐허가 역사적 진실을 알레고리적으로 드러낸다고 관찰한 내용은 VR 환경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라스트 굿바이>에서 마이다네크의 폐허는 단지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서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역사가 만나는 접점으로서의 알레고리적 장치가 된다. 스콜러는 역사적 현존을 표현할 때 파편(fragment), 그림자(shadow), 파편(shard)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한다[3]. VR 환경에서는 과거의 파편들(남겨진 구조물이나 캠프의 유물)과 기억의 흔적들(목소리의 메아리와 기억들)이 사용자의 현재 경험 속에서 지속된다. 역사적 의미가 지각자의 적극적 지각에 의해 형성된다는 개입의 중요성 역시 강화된다. VR 사용자의 경험은 그들이 어디를 바라보고 어떻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며, 역사를 마주하는 것이 매우 개인적이고 상황에 밀접하게 연결된 행위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VR이 몰입감을 제공하는 강력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재현의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잔혹한 역사를 다룰 때 얼마나 많은 감정과 몰입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윤리적 논의가 존재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지나치게 사실적이거나 “비디오 게임” 같은 경험이 맥락 없이 사용자들을 무감각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라스트 굿바이>의 제작자들은 핀카스 구터의 증언을 중심으로 체험을 구축함으로써, 인간적 서사가 가상적 탐험을 안내하도록 하여 이러한 문제를 완화한다. 이는 클로드 란즈만이 <쇼아>에서 보여준 철학과도 일치한다. 란즈만은 직접적으로 과거를 재현하거나 시뮬레이션하는 것을 피하고, 시신의 아카이브 영상 사용을 거부하며 현재의 풍경과 생존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다뤘다. VR에서도 환경은 시뮬레이션이지만 증언은 실제적이고 직설적이며, 현상학적 몰입과 윤리적 증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몰입형 가상현실 콘텐츠가 제공하는 현전감과 장소성은 역사적 기억과 알레고리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효과적이며 중요한 도구가 된다. 하지만 이를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윤리적이고 비평적 접근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본 논문의 논의는 앞으로 몰입형 미디어를 활용한 역사적 장소의 의미 탐구와 비평적 논의가 심화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있으며, 보다 구체적인 실천적 사례와 심도 있는 비평은 후속 연구를 통해 더욱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Ⅵ. 결 론

본 논문은 폐허라는 장소가 단순히 과거의 잔재나 역사적 흔적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기억의 매개체로서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역할을 수행 하고 있음을 밝혔다. 본 논문에서 논의 된 영화 작품들은 역사적 장소가 가진 보이지 않는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포착하고자 알레고리적, 구조주의적 접근을 택했다. 그러나 기존의 영화 매체가 가진 2차원적이고 평면적인 특성은 폐허의 복합적인 역사적 층위와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는 데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영화에서의 표현은 필연적으로 프레이밍과 몽타주에 의해 매개되었고, 이러한 매개는 관객이 감독의 기억에 대한 바르트적 푼크툼을 경험하되 공간에 온전히 체화된 경험을 하는 데 제약이 되었다.

반면, 최근 가상현실을 중심으로 한 몰입형 디지털 콘텐츠는 이러한 한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VR 기술은 관객을 폐허가 지닌 역사적 현장에 직접적으로 위치시키고, 단지 시각적 경험을 넘어 촉각적이고 체화된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라스트 굿바이>,<A Promise Kept>와 같은 VR 다큐멘터리는 영화를 통한 재현과 비교해 볼 때 단순히 역사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가 현장 속에서 능동적으로 경험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하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폐허는 더 이상 수동적이고 정적인 과거의 잔해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기억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사용자는 몰입형 미디어를 통해 과거의 현장과 깊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역사적 사건과 연결된 정서적, 윤리적 성찰을 보다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Biidaaban: First Light>는 역사적 폐허의 개념을 현대 도시의 미래적 폐허로 확장 시킴으로써, 몰입형 VR이 단지 과거의 장소를 재현하는 것에서 나아가 미래에 대한 성찰을 촉진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단순한 재현을 넘어 폐허가 가진 알레고리적 잠재성과 생태학적·문화적 상징성을 적극적으로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사용자의 신체적 이동과 촉각적 설치를 통해 구현된 이 작품은 VR이 지닌 현상학적 몰입이 단순히 시각과 청각의 자극을 넘어 신체 전체를 포함한 총체적 체험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자는 몰입형 가상현실이 예술작품이 가진 원본의 아우라(aura)를 새로운 형태로 구현하는 매체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장소성은 몰입형 가상현실이 구현하는 경험론적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적 실천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장소 중 최소한의 의미를 지닌 대상이 바로 폐허이기에 이를 연구의 소재로 삼았다. 몰입형 미디어는 원본이 가진 본래의 아우라를 파괴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접근은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가 단순한 재현이나 모방을 넘어 원본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이론적, 실천적 전환점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몰입형 콘텐츠의 발전과 확산은 새로운 윤리적, 표현적 도전 과제를 동반한다. 특히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룰 때 과도한 사실적 재현이나 감정적 몰입은 오히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감각의 무뎌짐 또는 불필요한 심리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몰입형 콘텐츠 제작자는 단지 현실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역사적 진실을 윤리적으로 전달하면서 동시에 깊은 성찰을 가능케 하는 균형을 찾아야 한다. <라스트 굿바이>, <A Promise Kept>는 생존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경험을 구성하여, 지나친 사실주의가 아닌 윤리적 균형 속에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설계되었다.

공간이 가진 의미를 프레임 속 이미지와 수사적 표현이 아닌 장소가 가진 현전감으로서 전달하는 장점을 지닌 몰입형 가상현실은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장소가 가진 알레고리적 의미를 드러내고 경험 시키는데 있어서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볼 수 있다. 폐허가 20세기 후반 역사적 시간이 원본 적 가치와 시간의 가역적 잔재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료로써 활용되고 활발히 논의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폐허를 기록하는 가상현실 콘텐츠는 ‘장소’ 를 구현하는 기록 매체가 가진 인문학적 가치를 논의 해 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이것이 본 논문이 가진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현전감을 활용한 장소성의 구현이 몰입형 매체가 가진 주요 기술적 잠재성임을 볼 때 앞으로의 몰입형 미디어 기술은 사용자가 역사의 현장과 더욱 정교하고 깊이 있는 관계를 맺게 하며, 역사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나아가 폐허는 단순히 과거의 정적인 흔적이 아닌, 현재와 미래의 세대들이 역사적 진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생생한 공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즉, 몰입형 콘텐츠 기술의 발전과 함께 폐허는 단지 물리적 장소의 한계를 넘어 역사적 사건과의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만남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방향성을 제안하며, 앞으로의 디지털 콘텐츠 연구가 폐허라는 매개체를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본 연구를 통해 몰입형 VR이 폐허를 체험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한편, 역사적 비극을 재현함에 따라 수반되는 윤리적 고민도 필수적임을 강조하였다. 관객의 심리적 안전과 역사 왜곡의 방지를 위해, VR 콘텐츠 제작자는 사실성과 감흥 사이에서 신중한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함을 논의한 바 있다. 또한 본 연구는 제한된 사례에 기반한 이론적 고찰이므로, 향후에는 보다 다양한 VR 작품을 대상으로 한 분석과 이용자 경험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논의의 일반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 이론과 첨단 미디어 기술을 접목한 본 연구의 접근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역사 전달 담론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향후 후속 연구에서는 본 논의에 기반하여 VR의 역사 교육 효과를 정량적으로 검증하거나, 다른 유형의 폭력적 역사 현장(예: 전쟁터, 재난 유적 등)에 대한 몰입형 경험을 탐색함으로써, 공학적 구현과 미디어 미학적 해석을 아우르는 더욱 풍부한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기대한다.

Acknowledgments

본 연구에 큰 도움을 주셨던 애버딘 대학교 앨런 마르커스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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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허대겸(Daegyeom Heo)

2011년:시카고 예술대학 Film & New Media (석사)

2024년:영국 애버딘 대학교 (실감 매체 연구 박사)

2016년~2005년: 책임 연구원 / SERG Sound Emporium Research Lab, U.K

2019년~현 재: 대표 / 토포스 스튜디오 (Topos Studio)

※관심분야:실감 미디어 미학(Immersive Media aesthetics), 미디어 아트(Media Art), 공간 컴퓨팅 NUI (Spatial Computing Natural User Interface)

Fig 1.

Fig 1.
Cooperation of Parts, scenes from artwork and screen captures

Fig 2.

Fig 2.
Signal – Germany on the Air, scenes from artwork and screen captures

Fig. 3.

Fig. 3.
The Last Goodbye, scenes from artwork and screen captures

Fig 4.

Fig 4.
A Promise Kept, scenes from artwork and screen captures

Fig. 5.

Fig. 5.
Biidaaban: First Light, scenes from artwork and screen cap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