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Digital Contents Society
[ Article ]
Journal of Digital Contents Society - Vol. 23, No. 11, pp.2137-2146
ISSN: 1598-2009 (Print) 2287-738X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Nov 2022
Received 29 Sep 2022 Revised 20 Oct 2022 Accepted 24 Oct 2022
DOI: https://doi.org/10.9728/dcs.2022.23.11.2137

현전감을 고려한 VR 방탈출 게임의 스토리텔링 사례 연구

김은정1 ; 김정윤2, *
1가천대학교 문화컨텐츠기술연구소 연구교수
2가천대학교 미래산업대학 게임·영상학과 부교수
An Analysis of Interplay between Presence and Storytelling on the VR Room-escape Games
Eun Joung Kim1 ; Jung Yoon Kim2, *
1Research Professor, Culture Contents Technology Institute, Gachon University, Seongnam-si 131230, Korea
2Professor, Department of Game Media, College of Future Industry, Gachon University, Seongnam-si 131230, Korea

Correspondence to: *Jung Yoon Kim Tel: +82-31-750-8666 E-mail: kjyoon@ga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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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VR 기술의 핵심요소인 현전감과 체험 미디어로서의 게임의 스토리텔링과의 관계를 고찰하기 위해 VR 방탈출 게임을 분석한 사례 연구다. VR 방탈출 게임은 ‘방을 탈출하라’는 단일한 목적을 위해 기술이 창조한 비실재 공간 속 여러 객체와 상호작용하며 임의로 창조된 가상의 공간을 하나의 장소로 경험한다. 따라서 ‘특정 공간에 실제로 있는 듯한’ 유저의 심리 상태, 즉 현전감을 연구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르다. 이에 본 연구는 VR 콘텐츠의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여 현전감을 고려한 스토리텔링을 분석하고자 출시 이후 꾸준히 높은 판매율을 보이고 있는 VR 방탈출 게임 세 가지를 분석하였다. 각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문헌 조사를 통해 현전감을 형성하는 상호작용의 세 가지 구성요소를 추출하고, 요소마다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만들기 위한 스토리텔링 전략을 파악하였다. 더불어 각 사례별 유저가 느끼는 장소감을 분류해 향후 버츄얼 공간 연구와 이를 활용한 몰입감 높은 VR 콘텐츠를 개발하는데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interplay between presence and storytelling through an analysis of the top-listed three VR room-escape games. The player in the room-escape game interacts with objects placed in a closed virtual space for the single purpose of “escape the room” and experiences the inside of the intentionally created space. Therefore, VR room-escape games are the most suitable genre for studying the non-mediated state of mind or the sense of being there, that is, the presence. To analyze each game in detail, this study explored the three components of interaction including navigation, manipulation and communication with a virtual reality environment through literature research and identified what storytelling strategies were attempted for making meaningful interactions with the virtual space. This study will help to do further research on in-depth understanding virtual reality user experience and designing immersive VR contents by classifying the sense of place that was virtually mediated through the technologies.

Keywords:

Virtual Reality, Presence, Interactivity, Room-escape Game, Storytelling

키워드:

현전감, 상호작용, 방탈출 게임, 스토리텔링

Ⅰ. 서 론

실감 미디어 지평이 확대되는 가운데 이야기를 단순히 듣거나 보는 대신 직접 체험하고 공유하는 ‘스토리두잉 (story-doing)’을 지향하는 젊은 세대가 급증하고 있다. 스토리두잉에서 이야기란 단순히 말해지는 것이 아닌 만져지는 것이며 실감 체험을 통한 깊은 공감으로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1]. 창조된 가상 세계에 놓인 오브제를 직접 만지고 체험하는 가상현실 (VR; virtual reality) 기술은 스토리두잉을 지향하는 메타버스 시대에 집중 투자받고 있으며 VR 콘텐츠에 대한 수요 역시 급증하고 있다[2].

둘러싸인 감각, 깊이감, 원하는 대로 두리번거릴 수 있는 시점을 소유한 VR 기술은 유저가 현실의 일상에서 벗어나 완벽한 매직 서클로의 진입을 가능케 한다[3]. 이로 인해 VR 환경 속 유저는 스크린의 경계, 즉 프레임이 없는 가상의 세계로 들어서고 현실이 아님에도 그곳에 실재한다는 느낌, 즉 현전감 (presence)으로 인해 기존 매체에서 느낄 수 없는 강한 몰입을 경험한다. 유저의 몰입도는 가상현실 콘텐츠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이를 좌우하는 현전감 연구는 VR 콘텐츠 제작을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전감 연구는 기술적인 측면만을 고려할 뿐 현전감을 높이는 스토리텔링에 관한 사례 연구는 미약하다[4]. VR 기기의 대중화와 더불어 VR 시장의 확대를 위해 킬러 콘텐츠가 필요한 현시점에 본 연구를 통해 현전감과 스토리텔링의 관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VR 방탈출 게임에 주목한다. VR 게임의 인기 장르인 FPS (First-Person Shooter), 리듬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과 달리 방탈출 게임은 VR 기술이 만들어내는 가상 세계, 즉 실재가 아닌 기술이 창조한 비실재 공간이 하나의 풀어야 할 퍼즐로 등장하는 게임성 (gameness)을 갖는다. ‘방을 탈출하라’는 단일한 목적을 위해 플레이어는 폐쇄된 게임 공간에서 여러 객체와 상호작용을 하며 임의로 창조된 공간 내부를 하나의 장소로 경험한다. 따라서 VR 방탈출 게임은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허구적 공간 속 실제 행동을 통해 가상의 공간과 상호작용한다는 점 때문에 VR 매체를 경험하는 유저의 비매개적 심리 상태, 즉 현전감을 연구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르다.

지금까지 방탈출 게임은 현장, 모바일, VR 등 플랫폼에 따라 관련 연구가 진행되었다. 우선 기본 연구로 방탈출 게임의 게임성 (playability)을 정의한 논문과[5], 이에 따른 관습적 서사 구조와 스토리텔링 유형을 분석한 논문이 있다[6][7]. 이후 플랫폼 간 연계 연구로 현장형 방탈출 게임과 VR 방탈출 게임의 몰입도 비교[8] 또는 둘 간의 특성을 결합한 인터랙션 디자인 연구도 시행되었다[9]. 대부분의 기존 연구는 방탈출 게임이 VR 기술로 구현되었을 때 현실 불가능한 세계를 재현할 수 있다는 점과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VR 콘텐츠 제작 시 필요한 유저의 현전감을 높이는 방법이나 사례별 스토리텔링 분석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본 연구는 VR 콘텐츠의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여 현전감과 이를 높일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분석하고자 출시 이후 꾸준히 높은 판매율을 보인 VR 방탈출 게임 세 가지를 분석하였다. 각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문헌 조사를 통해 현전감을 형성하는 상호작용의 세 가지 구성요소를 추출하고, 요소마다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만들기 위한 스토리텔링 전략을 파악하였다. 더불어 각 사례별 유저가 느끼는 장소감(sense of place)을 분류해 향후 버츄얼 공간 연구와 이를 활용한 몰입감 높은 VR 콘텐츠를 개발하는데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Ⅱ. 현전감을 고려한 VR 게임 스토리텔링

2-1 디지털 게임과 현전감

미디어 기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유저 경험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물리적으로 다른 장소에 있을지라도 특정 공간 안에 ‘실제로 있는’ 느낌”을 총칭하는 현전감은 이러한 미디어 경험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어다. 특히 가상현실은 유저가 VR 기술로 매개된 비실재를 경험하면서도 그 사실을 잊고 매개된 환경을 실재처럼 느끼며 몰입하는 심리적 상태를 추구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여기 있다’라는 의식상태인 현전감이 높다라는 의미는 가상현실과 실제의 구분이 어렵다는 말과 등치 되어 가상현실환경을 구축하는 중요한 척도로 사용되어왔다[10].

현전감은 원래 ‘원격현전감(tele-presence)’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1980년 마빈 민스키(Marin MInsky)로 시작된 원격현전감은 위험한 작업 환경에 있는 장비나 기계를 먼 곳에서 안전하게 조종하고 통제하는 텔레오퍼레이션 (tele-operation)을 정교화하기 위해 도입되었다[11]. 물리적으로 먼 곳에서 텔레로봇 (telerobotics)을 조작하지만 마치 ‘거기에 있는 (being there)’듯 느끼도록 감각 장치를 고안한 목적이 이후 가상현실 기술과 접목된 것이다[12]. ‘원격 현전감’은 이후 소설, TV, 디지털 게임 등 여타 미디어에 확장 적용되면서 ‘이동 (transportation)’이라는 감각은 상실되고, 현실 속 신체감각을 동일하게 느끼도록 가상공간을 구현하는 기술적 현전감에 집중되었다[13]. 즉 감각 정보의 충실도, 환경지각 관련 통제, 물리적 상호작용 등 수치 가능한 감각적·물리적 요소들이 현전감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인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기술뿐 아니라 매체를 경험하는 유저의 정서와 인지적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기술적으로 현전감을 높인다고 해도 유저가 느끼는 체감 현전감 역시 비례하여 높아지지 않는다는 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14]. 이후로 현전감 연구는 매체의 특성과 더불어 매체를 사용하는 유저의 심리적 특성까지도 고려하는 등 현전감의 다면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15]. 현전감의 다면성을 연구한 기존 연구를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Multidimensional Aspects of Presence

이 중에서 론 톰보르니 (Ron Tamborini)는 전통적 매체보다 유저와의 상호작용성이 강한 디지털 게임의 현전감을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었다[16]. 첫째, 디지털 게임의 공간 현전감은 히터 (Heeter)의 개인적 현전감과[17] 비오카 (Biocca)와[18] 아이슬데진 외 (Ijsselsteijin et al.)의[19] 물리적 현전감이 통합된 개념으로 ‘가상환경 안으로 들어가 위치하는 존재 감각’을 뜻한다. 감각 채널로서 폭과 깊이가 제한적인 라디오나 TV와 달리 디지털 게임은 더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그래픽을 추구한다. 또한 유저의 시점으로 재편되는 화면과 모션 컨트롤러 조작을 통해 게임은 매우 높은 공간 현전감을 갖고 있다. 둘째, 디지털 게임의 사회적 현전감은 ‘함께 있다’라고 공존감, 심리적 개입, 의미 있는 사회적 행위에 따라 달라진다.

Fig. 1.

FPS with tracking and aiming system and Nintendo’s Wii that can mirror the user’s movements

공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호인지 (mutual awareness)가 중요한데, 이는 내가 가상의 다른 존재가 있다고 느끼는 것뿐 아니라 그 존재도 이에 상응하게 나를 느껴 서로를 인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면에서 디지털 게임은 플레이어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드는 몹과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통해 플레이어의 행동에 전략적으로 반응하는 NPC (non-player character) 등 행동적 관여와 심리적 개입이 매우 높은 매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디지털 게임의 셀프 현전감은 현실의 객관적인 신체 (objective body)와 가상으로 시뮬레이션 된 신체 (virtual body)와의 일체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저의 정신적 작용을 통해 몸을 인지하는 현상학적 신체, 즉 신체 스키마 (body schema)가 중요하다. 물리적 현실에서 인간은 객관적인 신체와 신체 스키마를 일치시켜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가상환경에서는 객관적 신체와 가상 신체의 움직임이 제대로 동기화되지 못했을 경우, 신체 스키마의 왜곡이 일어나고 셀프 현전감은 떨어진다[18]. 이러한 왜곡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디지털 게임은 트래킹 장치를 이용하거나[20] 닌텐도 Wii과 같이 사용자의 이미지를 미러링하는 기능을 통해 셀프 현전감을 꾸준히 높이며 발전해왔다.

2-2 VR 방탈출 게임에서의 현전감

특정 매체의 사용자 경험 연구는 미디어 형식(media form)과 미디어 내용(media content)을 포괄하는 미디어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18]. 이러한 측면에서 본 연구가 집중하는 VR 방탈출 게임은 VR 이라는 특수한 미디어 형식뿐만 아니라 방탈출 게임이라는 게임성, 즉 내용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방탈출 게임은 어드벤처와 추리의 장르에서 파생한 게임이다. 즉 방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탈출해야 하는 탈출 모티브를 서사적 토대로 삼아 방안의 힌트를 모아 추리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탈출이라는 커다란 테마 안에 다양한 서사가 펼쳐지는데 갑작스럽게 감금되기도 하지만 초대되어 들어가기도 하고,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탐정이나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어 미션 (퀘스트)를 수행하기도 한다. 따라서 서사적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장르적 구분이 섞이기 때문에 방탈출 게임을 더 넓은 범위로 규정하자면, 폐쇄된 공간 안에 놓인 오브젝트들을 사용해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게임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7]. 이러한 게임성에서도 보듯 방탈출 게임은 공간과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을 통한 의미 있는 플레이 제공이 중요하다. 즉 방탈출 게임은 연출된 특정 공간에서 ‘탈출’이라는 목적 지향적 상호작용을 통해 그 공간의 의미를 체험하고 장소에 몰입하는 유저 경험을 중시한다. 따라서 VR 기술이 추구하는 ‘공간에 실제로 있는 느낌’인 현전감을 가장 명백하게 드러내는 장르가 VR 방탈출 게임이다.

현전감을 결정하는 가상공간 속 상호작용은 세 가지 요소로 세분화할 수 있다[21]. 첫째, 탐험 (Navigation)이다. 가상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둘러보며 (traveling) 길을 찾아가는 과정 (way-finding)으로 가상환경을 심미적으로 체험하는 상호작용에 해당한다. 둘째, 조작(Manipulation)으로 가상 세계와 그 안을 차지하는 오브젝트를 변형하고 상호 반응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셋째는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이다. 가상 세계 속 다른 유저 혹은 에이전트 (agent)와의 상호작용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시뮬레이션된 가상의 공간 속 유저가 플레이 가능한 탐험, 조작, 커뮤니케이션의 질과 폭에 따라서 현전감과 몰입도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물론 가상공간에서 일어나는 탐험, 조작, 커뮤니케이션은 앞서 언급한 VR 게임의 세 가지 현전감과 관련 있다. 공간의 탐색과 조작을 통해 느끼는 시공간의 연속적 인지는 공간 현전감에, 조작의 일체화는 셀프 현전감에, 커뮤니케이션의 실재감은 사회적 현전감에 각각 관여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방탈출 게임은 세 가지 플랫폼으로 구현되었다. 실재 방을 테마에 맞게 연출한 현장 방탈출, 포인트 앤 클릭 (Point-and-Click) 어드벤처 및 퍼즐 게임으로 분류되는 모바일 방탈출과 VR 방탈출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실재 공간을 탐험하는 현장 방탈출이 세 가지 플랫폼 중 가장 높은 현전감을 보일 거라 예상하지만, 현장 방탈출과 VR 방탈출의 현전감을 비교한 결과 현장 방탈출이라고 해도 실제와 다른 인테리어와 소품의 재현도가 떨어질 경우 또는 방 밖의 직원에게 힌트를 구하는 경우 실재감이 크게 떨어진다고 연구됐다[8]. 즉, 현전감을 높이는 데 있어서 물리적 실재 공간이냐 가상으로 매개된 공간이냐가 중요하기보다는 공간과의 상호작용의 질과 폭의 차이가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표 2는 플랫폼에 따른 방탈출 게임의 상호작용과 그 특징을 비교한 표다.

Interactivity according to Platforms of Escape Room Games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장 방탈출 게임은 시공간의 제약이 있지만, 공간 안에 놓인 자물쇠, 전자기기와 같은 물건 및 아이템과의 물리적 조작성이 매우 높다. 이에 반해 모바일 방탈출 게임은 스크린으로 매개된 게임 세계를 탐색하고 조작하기 때문에 내부인이 아닌 관찰자라는 대리성을 갖지만 복잡한 내러티브 및 영화적 연출을 강화해 세계관 확장이 가능하다[5]. 마지막 VR 방탈출 게임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통합체”로서 물리적으로 구현 불가능한 다양한 공간을 연출할 수 있으며[5], 시공간 역시 확대 및 연결이 자유롭고 비일상의 독특한 오브젝트와의 조작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시각과 청각을 외부로부터 차단하고 구성된 공간에 집중하기 때문에 비현실적 장소들을 관찰하고, 만나고, 이해하는 체현된 공간 경험이 중시된다.

2-3 체험형 공간 스토리텔링으로서 VR 방탈출 게임

스튜어(Steuer)에 따르면 현전감은 가상환경의 생동감(vividness)과 상호작용(Interactivity)에 좌우된다[22].

생동감은 배경 및 오브젝트의 형태와 질감 묘사의 정교함, 즉 높은 정세도 표현으로 감각의 선명도를 높이는 것이다. 상호작용은 유저의 자극에 대하여 컴퓨터가 얼마만큼 빨리 반응하느냐와 관계한다. 그러나 심리적 기제인 현전감은 그래픽, 하드웨어, 주변 인터넷 속도 등과 같은 기술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유저가 가상환경에 스스로 빠져들어 몰입할 때 더욱 극대화한다. 즉, 아무리 생동감 높은 가상환경을 만들고 그 안의 모든 물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물리 엔진을 가동한다고 해도, 그것이 의미 있는 상호작용일 경우에 사용자 경험으로서의 현전감이 올라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디지털 게임은 게임플레이를 디자인할 때, 유저가 게임 속 가상공간에 자발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만든다[23]. 여기서 ‘의미 있는’ 상호작용이란 게임의 서사적 요소를 뜻한다. 전통적 미디어는 대부분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승전결의 잘 짜인 플롯을 중시하지만, 디지털 게임은 게임 월드라는 커다란 가상 혹은 판타지 세계관을 설계하고 플레이어가 재미를 추구하도록 공간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공간성을 중시한 스토리텔링 매체라고도 볼 수 있다[24].

VR 방탈출 게임 역시 체험형 공간 스토리텔링을 구사한다. 공간 스토리텔링이란 공간을 체험하는 데 있어서 서사적 의미와 연출적 상황을 가미하여 그 공간을 더욱 밀도 있고 유희적으로 즐기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25]. VR 방탈출 게임은 ‘방을 탈출한다’라는 뚜렷한 최종 목적과 이를 위해 방 안에 숨겨진 여러 추리와 단서를 모아 ‘열쇠를 얻는다’는 하부 목적들을 하나씩 쟁취하면서 서사 공간 탐색, 오브젝트 조작, 에이전트와의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의미화를 만들어낸다. 즉, VR 방탈출 게임의 현전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희적 경험을 유도하는 스토리텔링이 필수적이다. 장소의 입구에 들어가서 출구로 빠져나올 때까지 일관된 테마 연출, 하부 공간들 사이의 이동 플롯, 각 장소와 개연성 있는 오브젝트와 기믹 연출, 미션 수행의 동기 부여, 전체 스토리와 캐릭터의 연계성 등이 갖추어졌을 때 컴퓨터로 매개된 ‘방’은 서사적 의미화로 가득 찬 유저의 체험 공간이 된다.

본 연구는 VR 방탈출 게임에서 유저의 현전감을 형성하는 세 가지 상호작용을 기준 삼아 몰입도 높은 스토리텔링의 양상과 성공 전략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VR 기술의 핵심요소인 현전감과 체험 미디어로서의 게임의 스토리텔링과의 관계를 모색할 것이다.


Ⅲ. VR 방탈출 게임의 스토리텔링 사례 분석

본 연구가 분석할 VR 방탈출 게임은 <아이 익스펙트 유 투 다이, I Expect You to Die> (Schell Game, 2016), <레드 매터, Red Matter> (Vertical Robot, 2018), <더 룸 VR: 어 다크 매터, The Room VR: A Dark Matter>(Fireproof Games, 2020)이다. 세 작품 모두 2021년 밸브가 발표한 VR 게임 인기순위에서 스팀(Steam) 출시 후 누적수익을 기준으로 하여 최다 판매 VR 게임으로 언급되었다[26].

<아이 익스펙트 유 투 다이>와 <레드 매터>는 높은 수익과 인기로 인해 두 번째 시리즈가 출시되었으며, <더 룸 VR>은 모바일 플랫폼에서 인기를 얻어 동일 세계관을 기반으로 VR 게임으로 확장된 작품이다.

3-1 일상공간의 재조직화

‘첩보원 시뮬레이션’이라고도 불리는 <아이 익스펙트 유 투 다이, 이후 ‘아이’로 표기>는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대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게임으로 플레이어가 게임 속 스파이가 되어 미션을 수행하는 형식의 방탈출 게임이다. <아이>의 전체적인 공간 구성은 한 공간을 연속적으로 탐색하는 여타 방탈출 게임과 달리 ‘The Agency’라는 비밀조직으로부터 지령을 받는 ‘사무실’과 쳅터별 나누어진 미션 현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아이>는 잘린 공간이 하나의 테마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총 7가지 미션을 완수했을 때 슈퍼빌런 ‘Dr.Zor’의 거대한 음모가 밝혀지는 점층적 스토리 라인을 사용했다.

가상현실에서 탐험은 현실에서는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이동 (traveling)과 길찾기 (way-finding)로 구성된다. 이동은 플레이어가 시공간을 통한 움직임을 뜻하며, 길찾기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언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칭한다[21]. 이에 따르면 <아이>는 이동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림 2처럼 유저는 비행기 화물칸에 실린 차 안, 창문 닦기 트레일러, 잠수함 구조선, 기차 객실 등 좁은 장소에 앉은 상태로 이동하지 않고 모든 퍼즐을 풀어야 한다. 길찾기 역시 단순하다. ‘사무실’에서 ‘Support Agent’로부터 사전에 투입될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듣기 때문에 어떤 장소로 이동할지와 해야 할 행동을 미리 숙지하게 된다. 요약하면, <아이>는 탐험의 상호작용이 높지 않다.

Fig. 2.

Screenshots of gameplay in <I Expect You to Die>

<아이>가 탐험을 최소화한 것은 VR의 기술저해요소인 멀미(motion sickness)를 없애는 방편으로 개발단계부터 설정된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 묶여있으면서 방을 탈출하는 상황을 연출해야 했던 개발팀은 악당에게 곤경에 빠져 꼼짝달싹 못 하는 첩보원의 상황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이를 시놉시스 삼아 VR 기술의 현전감을 최대화하는 방안을 연구하였다[27].

부족할 수 있는 탐험 요소를 보충하기 위해 <아이>는 다양한 조작을 통해 현전감을 높였다. 첫째, 자기수용감각(proprioception)을 고려한 조작이다. 자기수용감각이란 사용자의 몸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자각하는 것으로 현실에서 눕거나, 앉거나, 서거나, 한 발로 서는 등 신체의 위치, 방향, 움직임을 제어하는 감각체계에 해당한다[28]. PC나 콘솔 게임은 대부분 의자에 앉아서 스크린을 주시하며 플레이하기에 자기수용감각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VR 게임은 유저의 자기수용감각이 현전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29].

이러한 면에서 <아이>는 유저의 앉아있는 자세와 동일감각을 주기 위해, 차에 앉거나, 거실 의자에 앉거나, 기차 객실에 앉아있는 플레이어의 상황을 시나리오의 초기값으로 설정했다.

둘째, 가상의 객체와 가능한 상호작용의 범위를 최대한 확대했다. 나사를 풀기에 최적화된 도구는 스크류 드라이버지만, 실제상황에서는 포켓 나이프를 홈에 맞추어 나사를 돌리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즉, 한 가지 도구를 사용하는 조작의 범위는 플레이어마다 다르고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는 이러한 상황을 미리 짐작하고, 플레이어가 드라이버가 아닌 나이프로 나사를 풀려고 하면, ‘Support Agent’의 음성으로 나사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외에 <아이>는 깨진 유리로 물건을 자르고, 돈에 불을 붙여 장작을 태우고, 폭탄 대신 샴페인 병을 넣어 대포를 쏘는 등의 게임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는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자유도를 높여 조작에 대한 몰입을 유도했다. 더불어 그림 2처럼 염력 기능을 플레이어의 슈퍼파워로 설정해 멀리 있는 물건 조작도 가능하게 함으로써 앉아있음으로써 발생하는 제한적인 게임플레이 요소를 극복했다.

<아이>의 커뮤니케이션은 ‘Support Agent’와의 보이스를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 <아이>는 스파이 테마에 맞게 탈출 시간제한을 두어 퍼즐 풀이에 긴박감과 집중력을 높였다. 따라서 효과음처럼 계속해서 미션을 지시하고 플레이어의 임무를 돕는 ‘Support Agent’의 보이스는 유저가 게임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이자 효과음이다. 더불어 ‘Support Agent’는 유저의 행동에 따라 적절한 지시와 힌트를 주고 때로는 격려하며 너의 행동을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을 전달한다. 물론 ‘Support Agent’가 캐릭터로 등장해 직접 가상환경이나 오브젝트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조력자와 함께 미션을 완수한다는 스토리 설정은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회적 공존감을 높여준다.

<아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상의 공간을 ‘스파이 놀이’라는 테마와 세계를 구한다는 정확한 목표를 제시하며 공간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차, 산장, 기차 같은 익숙한 공간에서 평상시 생각지 않은 방식으로 가상의 물건을 조작하는 재미를 통해 일상의 공간을 새롭게 재조직했다.

3-2 SF 공간의 체득화

<레드 매터>에서 플레이어는 토성의 위성 중 하나인 레아에 있는 볼그라비아 인민 공화국의 군사기지를 침투해 비밀문서를 가져오는 미션이 주어진다. 플레이어는 비밀리에 과학실험을 진행한 볼그라비아에 대항하는 아틀란틱 유니온의 요원으로 엡실론(Epsilon)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다. 미래 우주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레드 매터>는 VR 기술의 최적화를 보여주는 공간 실현인 ‘과학적 경이’에 해당하는 우주기지와 토성 등 SF 영화에서 보기만 했던 장소를 360도 VR로 구현했다.

낯설고 경이로운 광경의 실재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각적 생생함은 물론 공간 곳곳을 찾고 탐색하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유도하여야 한다. 또한 장소 내부를 깊고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공간 탐험을 잘 설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낯선 공간에 갑작스럽게 떨어진 플레이어가 길을 잃지 않고 목적성을 갖고 움직이도록 공간에 대한 인지적 맵(cognitive map)을 효율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레드 매터>는 층마다 설치된 지도, 표지판, 음성 및 텍스트, 이동의 제한 등 여러 가지 길찾기 보조를 사용했다. 지상 1층부터 지하 2층으로 이어진 군사기지는 오직 엘리베이터로 이동 가능하며 한 층에서 주어진 퍼즐을 모두 풀어야만 순차적으로 층 이동이 가능하다. 이러한 ‘분할 정복 전략(divide and conquer strategy)’은 외계행성의 연구실이라는 생경하고 넓은 공간을 차례로 장악하기 때문에 길찾기가 쉽고 공간에 따른 스토리 전개도 쉽다[21]. 여기에 모든 언어가 외래어로 쓰인 환경은 번역기를 사용해야만 해독할 수 있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불편함보다는 오히려 궁금증과 목적의식을 높여준다. 외래어를 사용한다는 논리적 설정은 공간의 현실감을 확보할 뿐 아니라, 단서를 찾기 위해 관련 문서, 표지판, 스크린 등을 번역기를 사용해 해독하면서 유저는 조각난 단서를 재차 확인하고 강화된 인지적 지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레드 매터>의 조작은 플레이어가 VR 기기를 사용하는 실제상황과 싱크를 맞추어 현전감을 높였다. 스토리 상 주인공 엡실론은 양손에 기계 팔을 들고 움직이는데, 가상의 기계 팔을 VR 게임을 할 때 직접 착용하는 트랙 가능한 핸드 컨트롤러와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연출됐다. 왼손은 스틱을 조정해 번역기, 조명, 로봇팔로 대체해 사용하며, 오른손은 로봇팔과 좌우상하 이동을 담당한다. 풀어야 하는 기믹이나 퍼즐 역시 갈고리 손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휠 돌리기’, ‘버튼 누르기’, ‘레버 당기기’, ‘물건 끼우기’ 등과 같은 간단한 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레드 매터>는 텔레포트(teleport), 점프(jump), 대쉬(dash)라는 세 가지 옵션을 사용해 이동한다. 앞선 <아이>와 달리 <레드 매터>는 SF 공간을 탐색하는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근거리뿐 아니라 빠른 원거리 이동이 필수다. 이를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VR 이동방법인 텔레포트 (혹은 ‘Put me there’)와 함께 우주복을 입고 돌아다닌다는 게임 속 설정에 따라 마치 무중력상태에서 떠다니듯 항해하는 느낌의 ‘점프’와 ‘대쉬’이동까지 설정했다. 이렇게 직관적이고 현실과 일치하는 조작과 이동은 플레이 경험에 있어서 현전감과 몰입감을 동시에 높여 준다.

<레드 매터>의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Commander’와의 보이스 지령과 번역기 패널의 텍스트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특이하게 그림 3처럼 우주복을 입은 플레이어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보통 VR은 1인칭 시점을 갖기에 양손 이외에 다른 신체 부위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러 거울이나 창에 비친 실루엣을 통해 가상환경 속 자신의 모습이 어떠할지 ‘셀프 미러링’하기도 한다. 이는 가상의 캐릭터와 플레이어와의 심리적인 일체감을 통해 플레이어의 셀프 현전감을 높이기 위해서다[18]. <레드 매터> 역시 셀프 미러링을 통해 또 다른 자신과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버추얼 바디에 대한 전체적인 매핑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심리적 동질감까지 형성했다. 무엇보다 본인이 등장하는 이유를 서사에 녹여 플레이어가 셀프 미러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Commander’와의 통신이 끊길 때마다 나타나는 자기 이미지는 엡실론의 잠재의식이 만든 것으로, 주인공은 행성에 파견된 것이 아니라, 주인공 기억 속에 숨겨진 문서를 찾기 위해 심리적으로 실험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Fig. 3.

Screenshots of gameplay in <Red Matter>

<레드 매터>는 과학적 경이로 채워진 비현실적 공간을 탈출이라는 과정을 통해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곳을 밀도 높게 탐험함으로써 경이를 몸의 감각으로 직접 경험하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유저는 그 장소를 총체적으로 만나고, 이해하고 결국 체득하게 된다. 따라서 <레드 매터>는 잘 짜인 스토리 설정과 이와 부합되는 조작의 일체화를 통해 SF 공간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공간 스토리텔링을 하였다.

3-3 환상 공간의 기믹화

<더 룸 VR: 어 다크 매터, 이후 ‘더 룸’으로 표기>는 기존 모바일 방탈출 게임에 이어 5번째로 만들어진 시리즈물로 ‘널(Null)’이라는 신비한 물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 환상 추리물이다. <더 룸>은 탐정-플레이어가 1908년 런던에서 일어난 이집트 고고학자 실종 사건 수사를 맡으며 그와 함께 사라진 목사와 마녀의 영혼을 되찾아 현실의 세계로 되돌아오는 내용이다. ‘널’은 새로운 공간을 여는 신비한 힘을 가진 물질로 주인공을 불가사의한 비밀의 장소로 트랜스포팅할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더 룸>은 ‘널’을 얻으려는 비밀조직과 이를 막으려는 마녀를 도와 피라미드 유적지, 마법사의 집 등 환상 공간을 넘나든다. 따라서 <더 룸> 시리즈는 스토리를 통해 초월적 공간을 탐험하고자 하는 목적을 강화하고 가상 세계를 ‘읽어내려는’ 플레이어의 욕구를 높인 작품이다.

<더 룸>은 공간의 환상성을 충족시킬만한 다양한 오브젝트와 독특한 기믹이 많다. 우선, 탐정이 사용하는 ‘아이피스 (eyepiece)’라는 안경은 ‘널’로 만든 렌즈로 현실의 숨겨진 또 다른 차원을 볼 수 있는 도구이자 게임 시스템이다. 이를 사용하면 숨겨진 메시지를 보거나 관련 스토리를 컷신처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작은 장소를 슈퍼줌 (superzoom)해서 내부로 들어가는 이색 탐험까지 할 수 있다. 일례로 부서진 오르간을 고치기 위해 슈퍼줌하여 오르간 내부로 직접 들어간다든지, 작은 기계 안으로 이동해 자물쇠를 얻고 밖으로 나와 장치를 여는 방식으로 기믹이 진행된다. 또한 마녀의 집에서 신기한 약재를 모아 가마솥에 넣고, 고대 이집트 유물에 그려진 상형문자를 풀고, 빛을 이용해 교회 바닥의 비밀 계단을 찾는 등 물리적 실제에서는 불가능한 조작을 통해 환상 공간을 경험한다.

방탈출 게임은 퍼즐이 스토리 속에 잘 녹아 들어가 있고, 아이템 사용의 개연성이 높고 장치가 독특해서 창의적인 발상을 요할 때 몰입감 있는 플레이가 가능하다[5]. <더 룸>은 낯설고 기이한 공간을 잘 드러내 주는 여러 객체와 독특한 기계 장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는 공간성을 창조했다.

그러나 다양한 조작과 많은 단서의 조합으로 퍼즐이 완성되다 보니 게임플레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은 오히려 현전감을 떨어뜨린다. 그림 4처럼 공중에 펼쳐지는 인벤토리 창이나 텍스트, 그리고 물음표 마크를 내리면 나오는 단서들은 게임 인터페이스와 단절된 또 다른 인터페이스의 중첩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시공간의 불연속이 느껴진다. 스토리에 부합되는 캐릭터나 장치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게임 디자이너와의 소통에 해당하는 이러한 인터페이스 연출은 방탈출 까페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힌트를 얻는 현장 방탈출 게임처럼 현전감을 떨어뜨린다. 또한 앞의 두 게임과 달리 플레이어는 가상의 캐릭터와 직접 대화하는 대신 영화적 연출로 스토리를 전달받기 때문에 매체의 투명성 역시 삭감된다.

Fig. 4.

Screenshots of gameplay in <The Room VR: A Dark Matter>

<더 룸>은 환상의 공간을 신기한 오브젝트와 복잡한 기계 장치를 연출해 불가사의한 비밀의 장소를 체험하도록 유도했다. 플레이어는 신기한 기믹을 세심히 관찰한 후 손잡이나 버튼을 돌리고, 만지고, 두드리는 다양한 손동작, 그리고 획득한 오브젝트를 이곳저곳에서 사용해보는 시도를 거치면서 낯선 공간을 이해한다. <더 룸>이 보여준 상호작용의 방식 및 아이템의 용도는 방탈출 성공 여부나 다른 캐릭터와의 상호교류보다는 환상의 공간을 ‘경험’하는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더 룸>은 환상 공간의 기믹화를 통해 일상적인 현실로부터 분리시키는 방탈출 게임의 일탈적 경험을 극대화하였다.


Ⅳ. 결 론

본 연구는 현전감을 결정하는 세 가지 상호작용을 기준으로 세 가지 VR 방탈출 게임을 분석하였다. 표 3은 이를 요약한 결과표이며, 각 요인에 대한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Presence Evaluation by three interactivity on VR Rome-escape Games

첫째, 분석 대상인 VR 방탈출 게임 모두 세 가지 상호작용 중 조작성이 가장 높았다. 조작은 유저가 눈앞의 새로운 환경을 실험하고자 공간과 그 안을 메운 오브젝트를 변형하면서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가는 능력에 해당한다. 분석 게임 모두 특유의 단서 탐색 및 기믹 퍼즐이라는 브리콜라주적 플레이 (bricolage play)를 통해[5] 유저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오브젝트의 범위와 인터페이스의 특성을 다층적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가상 환경과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현실 가능한 조작 행위를 충분히 고려했다. 물론 단순한 현실 모방이 가상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조작 메커니즘은 아니지만, 세 작품 모두 잘 짜인 스토리와 이와 부합되는 조작의 일체화를 통해 몰입감과 현전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둘째, VR 기술의 극대화를 위해 거대한 가상의 도시를 건설하거나 미로와 같은 복잡한 공간을 설계할 수 있다. 그러나 가상공간의 현전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나치는 수동적 관찰보다는 탐색하고자 하는 서사적 모티브를 제시하고 공간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도록 목적성을 부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처럼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할 때도, <레드 매터>처럼 층간의 이동을 제한할 때도, <더 룸>처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동을 할 때도 세 작품 모두 이를 설명할 세계관이나 캐릭터를 설정해 플레이어가 ‘구성된’ 세계를 기꺼이 탐험하도록 유도했다.

셋째, 분석 게임 모두 커뮤니케이션은 그리 높지 않다. 이는 방탈출을 위해 단서나 힌트를 줄 때 게임의 인터페이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거나 혹은 시공간의 몰입에 방해되지 않도록 연출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분석 게임은 보이스를 통한 접근이나 플레이어가 착용한 슈트와 기기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해 현전감을 낮추지 않으면서 게임플레이가 가능하도록 시도했지만 크게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VR 방탈출 게임은 밀폐된 공간에 여러 오브젝트를 나열하고 그 안의 다양한 조작을 통해 의문을 풀어나가도록 유도한다. 이를 위해 창조된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게임의 스토리가 되고 또한 공간의 미학이 된다. 따라서 현전감 높은 VR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 환경과 똑같이 구현하려는 기술적 시도에서 더 나아가 게임적 특성을 활용하여 목적지향적 탐험, 조작, 커뮤니케이션이 되도록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 또한 공간에 서사적 요소를 부가하여 단순히 둘러보는 차원이 아니라 그 장소가 전달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의미 있는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이럴 때 VR 콘텐츠로서 높은 현전감을 보장받는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방탈출 게임이라는 한 장르에 국한된 콘텐츠 분석으로 사례 연구라는 한계가 있으나 VR 기술이 중시하는 비매개 경험인 현전감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제작될 여러 VR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기초연구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VR 콘텐츠로서 심층적 사례 연구가 미약했던 게임연구 분야에서 유저 몰입에 관여하는 현전감과 스토리텔링을 관련지어 연구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추후 본 연구를 통해 도출된 결과를 토대로 세 가지 상호작용인 탐험, 조작, 커뮤니케이션의 관계를 모형화하고 실증조사를 통해 검증하는 연구로 확장할 것이다.

Acknowledgments

본 연구는 문화체육관광부 및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개발지원사업으로 수행되었음(과제번호: R202004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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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은정(Eun Joung Kim)

2015년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문화 석사)

2021년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문화 박사)

2021년~현 재: 가천대학교 문화콘텐츠기술연구소 연구교수

※관심분야 : 스토리텔링, VR/AR, 메타버스, 가상신체

김정윤(Jung Yoon Kim)

2013년 :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게임전공 (영상학 박사)

2016년~현 재: 가천대학교 미래산업대학 게임·영상학과 부교수

※관심분야 : 게임응용기술, 게임콘텐츠, 메타버스, 가상현실

Fig. 1.

Fig. 1.
FPS with tracking and aiming system and Nintendo’s Wii that can mirror the user’s movements

Fig. 2.

Fig. 2.
Screenshots of gameplay in <I Expect You to Die>

Fig. 3.

Fig. 3.
Screenshots of gameplay in <Red Matter>

Fig. 4.

Fig. 4.
Screenshots of gameplay in <The Room VR: A Dark Matter>

Table 1.

Multidimensional Aspects of Presence

Medium Scholar Dimension Definition
VR Heeter (1992) Personal Presence the extent to which you feel you are in a virtual world
Social Presence the extent to which other beings exist in the world and appear to react to you
Environmental Presence the extent to which the environmental appears to know that you are there and to react to you
Biocca (1997) Physical Presence the sense of being psychically located in a virtual environment
Social Presence the sense of being together with another and mental models of other intelligences
Self Presence the awareness of self-identity inside a virtual world
Ijsselsteijn et al. (2000) Physical Presence the sense of being physically located somewhere
Social Presence the feeling of being together (and communicating) with someone
Digital

Game
Tamborini (2006) Spatial Presence vividness of and Interactivity with the virtual environment and objects
Social Presence mutual awareness, psychological involvement, and behavioral engagement
Self Presence close mapping of a virtual body to a user’s actual physical body

Table 2.

Interactivity according to Platforms of Escape Room Games

Platform Game Navigation Manipulation Communication Interactivity
Off-line -Unmediated move and search
-Limited temporospatial extension and lack of multi-layered connection between spaces
-Physical interactions with every object -Multiplay
-Talk with the crew
Operability
Mobile -Reproduction of Physically impossible space and time
-Limitless spatial extension and multi-layered connection between spaces
-Lack of various interactions except a point-clink on the screen
-Dramatic changes on the space and objects
-Restricted range of user’s point of views
-Solo play
-Text and voice
Narrativity
VR -Reproduction of Physically impossible space and time
-Limitless spatial extension and multi-layered connection between spaces
-Possible physical interactions with some objects
-Dramatic changes on the space and objects
-Possible 360 degree view
-Solo and multiplay
-Text, voice and virtual agent
Sense of Place

Table 3.

Presence Evaluation by three interactivity on VR Rome-escape Games

HIgh: ● Medium: ◉ Low: ◌
VR Room Escape Game Interactivity in Virtual Reality
Navigation Manipulation Communication
I expected you to die
Red Matter
The Room VR: A Dark Matter